▶ 야트막한 언덕 위 은은한 성당 종소리 순교의 아픔 묻어 있는 듯
공세리성당은 지난 1890년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아홉 번째이자 대전교구에서 는 첫 번째로 설립된 곳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충청남도 아산은 희생과 헌신이 깃든 땅이다. 천주교 4대 박해기간에 순교자 대부분이 희생된 내포(가야산의앞뒤에 있는 열 고을) 지역 중 한 곳인 아산에는 32명의 순교자가 잠든공세리 성당이 있고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곳은 아름다운 풍광에 역사적 의미도 깊어 돌아볼 만한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공세리 성당과 만추를 머금은 현충사의 풍광을 둘러봤다.
◆공세리 성당
“주교님, 아름다운땅 조선으로 가라는 발령을 나흘 전에 받았습니다. 이 거룩한 땅 위에서일하면서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에 저의 땀을 섞게 됐습니다." 지난 1894년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드비즈 신부가조선 선교사로 발령을 받고 주교에게보낸 편지 중 일부다. 글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입국한 1894년은 내포 지역에서 1만명이 순교한 천주교 4대 박해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공세리성당은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1890년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아홉 번째이자 대전교구에서는 첫 번째로 설립된 성당이다. 125년을 맞는공세리 성당은 충남 지정문화재 144호로 로마네스크풍 건축양식에 따라 설계됐다. 드비즈 신부가 지은 성당에는 병인박해 당시의 유물과 유품들이 보존돼 있으며 대전교구 최초의 감실(성체를 모셔 둔 곳)을 비롯,1,500여점의 유물이 보관되고 있다.
성당 주위에는 십자가의 길과 별채로 꾸며진 성체조배실, 수령 350년이넘는 보호수와 150여명을 수용할 수있는‘ 예수마음 피정의 집'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세리 성당이 위치한 1만여평의부지는 1478년부터 1762년까지 300여년 동안 운영됐던 세곡을 저장하던 창고지였다. 내포 지역의 입구 역할을 했던 지리적 특성상 아산은 신앙의 못자리라 불릴 정도로 한국 천주교 역사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신앙의 증거에 관한 이야기가 공세리성당에 넘쳐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세리 성당이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이 같은 역사적 의미에 더해 아름다운 풍광을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아산을 찾은 첫 날 오후 찾아간 공세리 성당은 잔뜩 찌푸린 하늘 사이로 파란 하늘이 군데군데 보이는 스산한 날씨였다. 며칠 새 오락가락했던 비로 빨아들인 물기가 힘에 겨운 단풍들은 떨어져 낙엽이 됐고 그나마 부지런한 신자와 관리인들덕에 떨어진 낙엽도 자취를 찾아볼수 없었다.
◆현충사
아산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모신 사당이며 장군이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살던 곳이다. 현충사에 이순신 장군의 묘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장군의묘는 현충사에서 8㎞ 떨어진 음봉면에 있다.
장군의 사당과 아들 이면의 묘가있는 현충사는 1706년(숙종 32년) 충청도 유생들이 숙종에게 상소해 건립했으며 1707년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고 사액했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됐으며 1906년 을사늑약에 분노한 유림들이 현충사 유허비를 건립했다. 일제강점기 이충무공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처하자 민족지사들이‘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고 민족성금을 모아 1932년 현충사를 중건했다는 내용을 기록한 비문이 입구를 들어가서 오른편에 있다.
2011년 전시관과 교육관을 갖춘충무공 이순신기념관이 건립됐으며전시관에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관한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