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그것은 음악이란 겉으로 아름다운 것 만큼, 그 아름다움을 현실에서 구현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음악도 하나의 도전이고, 그 어떤 도전도 (현실의)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책과 음악 사이를 오가며 인생을 이상적으로만 살아가고 있을 당시, 현실은 늘 배고픔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삶이 꼭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고, 음악은 늘 그저 동화 속의 백설공주였을 뿐이었다.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지만 그저 주위에 있는 악기를 보면 이것저것 두들겨 보곤 했다. 기타, 피아노 등이 그것인데, 피아노는 웬만한 즉흥곡 쯤은 연주할 수 있었으니(쇼팽의 즉흥곡 따위가 아닌 자작곡을 말한다) 믿거나 말거나, 남이 들으면 꽤나 공부한 줄 착각하곤 했다.
교회 등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반주자 조차도 무슨 곡이냐고 물어오곤 했다. 당시 학교를 그만두고 이곳저곳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에서 두어 달간 머물며 타이프 등을 배우면서 점심을 공짜로 얻어 먹고 있었다.
그곳의 디렉터 K는 나이 약 30대 중반의 시각장애인이었는데, 눈빛이 예리한 것이 늘 우리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하는 여인이었다. 그곳 커뮤니티 홀에 낡은 피아노와 당구대가 한 대 있었는데, 점심시간이면 당구를 친다든지 아무도 없을 때면 나홀로 피아노를 두들기곤 했다. 그저 손가락 가는 대로 두들기는 것이었지만 그 당시 현실이 현실이었던 만큼 꽤나 애수 찬 가락이 나오곤 했던 모양이다.
어느날 그곳의 매니저가 피아니스트냐고 물어왔다. ‘아니’라고 했더니 디렉터 K가 당신의 음악에 무척 감사해 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듣는다는 생각에 피아노 치는 장난을 당장 그만두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 당시, 나 자신을 위한 음악이었다기 보다는 고독한 삶 속에서 K에게 들려왔던 하나의 칸타빌레였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후 K에게 거창한 고별 파티의 대접을 받긴 했지만 음악하시는 분들에겐 좀 쑥스러운 고백이기도 하다.
파가니니의 칸타빌레(바이올린 독주곡)를 듣고 있으면 어딘지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듣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들곤한다. 나그네의 고독이라고나할까, 감성이 길을 잃고… 멜랑콜릭해 지면서 애수에 찬 감정에 빠져 들곤 하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 그것은 인생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아픔이지만 그 외롭다는 감정이 고통이 아니라 음악으로 승화될 때, 우리는 갑자기 외로운 방랑자가 되어 거리의 악사… 삶과 인생의, 세계를 방황하는 깊은 향수와 방랑의 동경에 빠져들곤 하는 것이다.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늘 아름답게 수놓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슬프면 슬픈대로, 아프면 아픈대로 그 아픔과 고독을 순수한 고백으로 수놓기 때문이다. 칸타빌레란 음악용어로‘노래하듯’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보통 빠르기… 즉 노래하듯 연주하라는 뜻이지만 음악이라는 것이 본래‘노래’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칸타빌레’는 왠지 음악의 본질… 즉 애수의 감정을 담으라는 암시가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독주곡,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 1번, 교향곡 5번 2악장의 곡들이 모두 이러한 곡들이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 1번의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는 통상 우리가 부르는 칸타빌에의 대명사‘안단테 칸타빌레’라는 곡으로서, 현악 4중주 뿐 아니라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연주되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는 1869년 여름 우크라이나 시골(카벤카)에 있는 누이동생 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의 벽난로 수리공이 부르는 노래에서 영감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슬라브 민요의 짙은 애수를 반영하고 있는 곡인데 1876년 톨스토이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방문했을 당시, 원장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톨스토이를 위해 특별 음악회를 마련했고 이때 연주됐던 곡이 바로‘안단테 칸타빌레’였다고 한다.
감격한 톨스토이는 눈물을 흘렸고, 그후 차이코프스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문학적 노고에 대해 그 연주를 들었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보답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적었다. 예술가는 예술가가 알아본다고… 편지를 받아본 차이코프스키 역시 “작곡가로서 그 때만큼 기쁨과 감동을 느낀 적은 없었다”며 감격해 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