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신문의 한 칼럼에서 읽은 것이다. 예술을 향한 구도자적 자세가 강하게 느껴지는 한 미대 교수의 글이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미술이라는 게 어떻게 학습이라는 체계로 이뤄지냐는 거였다. 그때가 미술학원 열풍이 불던 때였기에(지금도 이 열풍은 식지 않고 있다) 그의 불만은 더 극에 달했던 것 같다. 예술이란 타고난 탤런트에 의존해 계발되어야 할 영역이지 교육으로 완성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그의 지적이었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 미술가 김환기의 1971년 작 <점화>가 홍콩 경매에서 무려 47억에 팔렸다는 기사가 났다. 워낙 천재성 있는 작가의 그림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이 기사가 내 맘 한 구석에 찜찜함을 남겨놓았던 건 그 미대 교수의 글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학습’이 불편했다면, 내겐 이 대목에서 ‘돈’이 불편했다.
한국 드라마의 메인 메뉴인 재벌 이야기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게 미술 갤러리다. 갤러리는 재벌 회장 부인이 꼭 끼고 있는 필수 아이템 중 하나다. 이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재벌 총수의 여인들은 다 예술 마니아들인가?”이다. 물론 그들의 그림을 향한 애착 현상도 언젠가는 그들의 극진한 예술 사랑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무분별한 행태는 그렇게 순수하게 보기에만은 도가 훨씬 넘어버렸다.
과거의 한 대통령 집에서 수십 점의 고가 그림들이 발견되었다. 그는 한때 사재 국가 환수를 요구 받았을 때 자기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며 발뺌을 한 자였다. 그럼 그 고가의 그림들은 그에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순수 예술품들이었단 말인가?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가 정치할 때의 품행으로 봐서는 그는 그런 아름다운 예술품들과는 짝하기 힘든 스타일의 인물이었다. 그러니 이게 더더욱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다.
예술가에게 배고픈(배가 고파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배고픈 예술가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사실은 예술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때 그것의 예술적 가치는 급강하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예술이 아예 돈으로 치장되어 버릴 때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어쩌면 그 작품들이 예술적 가치를 순수하게 지향했던 그 예술가의 손 안에 있을 때에만 예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손을 벗어나 그것을 돈으로 값을 매기는 자들의 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닌 게 되고 만다.
그간 내가 속해 사역해 온 미국교단이 신학적인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학적인 입장 차이 때문에 그 교단을 떠나려고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나 역시 어려웠지만 약 한 달 전에 결국 그 교단을 떠났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노회 회의에서 한 여성 장로가 했던 발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주님의 교회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 주의 교회를 성도들의 숫자로, 거기에 응하는 물질적인 가격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주의 교회는 그런 데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의 발언은 건물의 가치, 은행잔고와 헌금 액수 같은 현실적인 것들로 교단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리더십을 향한 도전적인 발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토록 중요한 말을 해 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가만 보면 이 세상은 무엇이든 다 돈으로 값을 매기려고 한다. 갈수록 더 그러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세상엔, 끝까지 돈으로 환산하려고 해도 끝까지 돈 같은 걸로는 안 되는 게 여전히 많다. 그 중 몇 가지는 가족, 우정, 인간관계, 그리고 서로 간에 나누는 사랑의 빈도 같은 것들이다. 교회와 목회도 여기에 더할 만한 것이리라. 교회와 목회가 돈으로 환산될 때, 그때부터 교회와 목회는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물론 말은 이렇게 비장하게 하면서도 막상 현장에 들어서면 쉽지 않을 문제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목회를 출발하면서 난 이 점을 내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키고 싶다. 오늘 이 글이 이 ‘각인’의 빛이 얼마든지 바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초장에 분쇄시킬 수 있는 나의 엄중한 자기선언이었으면 한다. 기도와 성원 부탁드린다.
<
김 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