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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의료의향서

2015-11-24 (화) 안 상 훈 <암 전문의 엘에이 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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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사전 의료의향서’(advance healthcare directive)는 매우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사전 의료의향서란 본인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만약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의학적 상황에 처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환자 본인이 어떤 의료적 처치를 받고 싶은지 아닌지에 대한 의사를 표명해 놓은 법률적 서류이다.

과거에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적으로 병원에서 끝까지 치료를 받다가 임종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의료진들이 죽음의 문턱에 이를 때까지 치료에 개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현대 의료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실질적으로 사망한 것과 마찬가지인 환자를 각종 의료기기와 약물 등의 힘으로 심장박동과 호흡만을 유지하여 장기적으로 법적으로는 살아 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삶을 유지하는 것이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인지, 또한 이렇게 장기적으로 생명을 연장함으로써 가족들에게 미치는 정신적·경제적 고통과 더불어 사회적 비용 등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건강하고 사리판단을 할 수 있을 시기에 사전 의료의향서를 통하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의의 질병이나 사고를 당했을 때 본인이 어떤 치료는 원하고 어떤 치료는 원치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해두는 것이 바로 사전 의료의향서이다.

통상적으로 65세 이상 환자나 암이나 말기 심부전 등과 같은 심각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사전 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하는 것이 권고된다.

캘리포니아주의 사전 의료의향서는 다섯 가지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파트 1을 통해 건강 관리대리인(healthcare proxy 혹은 durable power of attorney for healthcare)을 지정할 수 있다.

본인이 의사표현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줄 사람을 지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의사나 다른 가족들에게 본인 대신 의사결정을 할 사람을 명확하게 해준다.

건강 관리대리인을 정할 때는 당사자에게 본인이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확실히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건강 관리대리인이 본인 대신 의사결정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는 것이다.

건강 관리대리인은 본인이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 당사자와 환자의 의지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 필요할 때에는 환자의 소원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 쉽게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을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건강 관리대리인이 미리 지정되지 않았다면 가족 중 가까운 순서대로 환자 대신 결정을 하게 된다.


파트 2에는 living will이 들어간다. Living will은 한국말로 번역하기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사망선택 유언 혹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서류는 의료인들에게 본인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떤 의료적 처치를 받고 싶은지를 명시해 놓은 것이다. Living will에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 들어갈 수 있는데 다음의 내용들이 대표적이다.

만약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심폐소생술 금지(DNR), 숨이 멈췄을 때 기도에 관을 넣어 호흡을 할 수 있도록 하지 말라고 하는 기도삽관 금지(DNI) 등을 적을 수 있다. 이런 의도를 미리 의료진에게 알려주면 의사가 사인을 하여 이런 처치들이 시행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또한 심각한 질병이나 사고로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 경비 위관(feeding tube)을 통해 음식물을 공급할지 등도 명시할 수 있다.

파트 3에는 사후 장기기증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고, 파트 4는 환자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도록 의료인을 지정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파트 5는 환자 본인이 사인을 하는 난이 있다. 최종적으로 서류는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사인을 하거나 공증을 받아야 유효하며,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에게 제출한다.

이런 사전 의료의향서의 내용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마음이 바뀌었을 때 언제든 의사나 간호사에게 얘기하면 된다. 미국에서는 AARP(전화번호 888-687-2277), Aging with Dignity (888-594-7437), 혹은 Caring Connections(800-658-8898) 등을 통해 사전 의료의향서 작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문의 (213)388-0908

<안 상 훈 <암 전문의 엘에이 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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