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는게 있다. 그가 태어나지 않았어도 집필이나 창작의 자양분이 된 곳 말이다. 유럽의 문호들에게 지중해의 외딴 도시가 그러했듯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는 쿠바 아바나와 함께 어촌마을 코히마르(Cojimar)가 제2의 둥지였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사랑했고, 쿠바의 여인을 사랑했고, 쿠바의 럼을 사랑했던 소설가였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악화로 헤밍웨이는 쿠바를 떠나야했지만 그의 흔적은 쿠바 곳곳에 흩어져 있다.
헤밍웨이 동상
어촌마을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의풍류가 서린 고장이다. 수도 아바나동쪽, 한적한 포구마을인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줬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가된 곳이다.
이념도 피부색도 달랐던 공간에서,헤밍웨이는 카리브해의 아득한 바다를 촉매 삼아 꿈을 포기하지 않은 한늙은 어부의 삶을 그려냈다.
코히마르 해변 한쪽에는 헤밍웨이의 동상이 서 있고 그가 즐겨 찾았다는 술집도 남아 있다. 헤밍웨이를 기리는 청새치 낚시대회도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코히마르 해변.
‘노인과 바다’의 여운이 깃든 술집마을은 요란스럽지 않고 아담한풍경이다. 현란한 이정표도 없고, 관광지를 떠올리게 하는 상인들이 몰려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운치있다. 해변을 거닐다 우연히 마주치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이곳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포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흉상은 한 어부가 기증한 고깃배의 프로펠러를 녹여 만들었다는사연을 담고 있는데,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바다를 바라보고 외롭게 서있다.
20년 넘는 세월을 쿠바에 머물렀던 헤밍웨이는 코히마르에서 낚시를즐겼고, 소설 속 노인인 선장과 술잔을 기울이며 풍류를 나눴다.“ 낚시하기 안 좋은 날이면 당장 글을 쓰겠다”고 할 정도로 낚시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었다. 노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의 후손들은 어촌마을에 남아 옛 추억을 전하고 있다.
레스토랑 ‘라 테라사’ (La Terraza)는 유일하게 이 포구마을에서 붐비는 곳이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단골 술집으로 내부에는 그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이곳에서 창밖 바다를 배경으로 라이브음악을 들으며 그가 마셨던 모히토(Mojito) 한 잔을 기울이는 기분은 묘하다.
소설 속 자양분이 된 어촌 사람들외딴 코히마르의 골목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듯한, 50년대 올드카들과 마주치는 게 오히려 낯설다. 미군정 시절, 아바나 근교는 미국 부호들의 휴양지였고 그들이 남긴 유흥의흔적이 수십년 세월을 지나 그대로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올드카들은 외국의 자동차 매니아들이 눈독을 들여도 팔지 않는 쿠바의 명물이 됐다.
라 테라사의 노인과 바다 동판.
포구마을 코히마르가 가슴 깊이박히는 것은 단지 헤밍웨이 때문만은 아니다. 아바나의 도심이 변질돼가는 것과는 달리 이곳 어촌마을의골목에서는 상상 속에 오래 묻어둔순박한 쿠바인들을 만난다. 카메라를들이대면 성긴 이를 먼저 드러내고웃는 모습들이다.
가난 속에서도 쾌활하고 때가 묻지 않은 미소와 눈빛. 그 정경들이 알알이 새겨진다. 소설 속 감흥을 이끌어낸 헤밍웨이의 선택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의숨결은 코히마르 외에도 쿠바의 낯선해변, 골목과 바에 잔잔하게 녹아 있다. 소설 ‘노인과 바다’ 배경의 다른한 축을 이뤘던 마리나 헤밍웨이는요트가 즐비한 관광지가 됐고, 그가실제로 거주했던 아바나 남쪽의 저택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그의 애장품인낚싯배도 함께 전시돼 아련한 여운을남긴다.
[여행 메모]가는길: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 중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쿠바 아바나까지 항공편이 수시로 오간다. 캐나다를 경유하는 방법도 있다. 입국 전에는 최종 경유지 공항에서 비자를구입해야 한다. 아바나와 코히마르간에는 버스가 오간다.
현지 교통: 쿠바에서 올드카 택시는 미터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흥정이 필수다. 버스가 다니지만대중교통이 부족해 다수의 출퇴근족들이 히치하이킹을 애용한다.
음식^환전: 고기 스튜‘로빠 비에하'와 절인 돼지고기를 구워낸‘레초' 등이 쿠바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야채와 햄인 섞인 복음밥인‘아로츠 프리또'도 한국인 입맛에 맞다.
기타정보: 1년 중 11~4월은 건기, 5~10월은 우기다. 기온은 연중22~28도로 온화한 편이다. 쿠바 내에서는 달러나 유로를 쿠바 화폐인빼소 꼰베르띠블레를 환전해 사용해야 한다. 현금인출기 사용 등은 쉽지않다.
코히마르 마을의 순박한 주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