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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가나안“ 님들께

2015-11-11 (수) 김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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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개월전 여러분의 이름 “가나안” 에 대해서 처음 들었습니다.

교회를“ 안나가” 는 성도들을 거꾸로 발음해서“ 가나안” 성도라고 부르더군요. 한편 의미있는 표현이라생각하면서도 한편 마음이 아팠습니다. “얼마나 교회가 싫었으면“가나안” 님들이 날로 증가할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가나안” 님들께서 교회를안나가실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대보다는 실망, 치유보다는 상처, 소망보다는 절망감이 컸기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저도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그런 이유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때문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말씀하듯이 저 역시 교회가 위선적이고, 당짓고, 비난을 즐기고, 듣기보다는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사업화 되었다고 느낄때가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분명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곳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교회에 대한이상과 기대치를 많이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교회라고해서 이 세상의 그 어떤 조직보다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이기에 이 세상의 조직보다 불합리하고 불충분하고 부조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조건과 제한에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교회라고 부르는 이유만은 분명히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우리를 불러 교회로 세우셨기때문입니다. 그 믿음은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특별합니다. (마16:16-18) 그래서 그 특별한 부르심 (은혜)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속합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너는 내꺼야” 와 “너는 내꺼니까내가 사랑해” 의 차이를 이해하는것과도 같습니다“. 주님이 나를 자녀 삼으셨기에 주님을 사랑해” 와“내가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자녀가 된거야” 는 분명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교회에 속했기에 교회를 사랑해” 이지 “내가 교회를 사랑하니까 교회에 속한거야” 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일4:10)지금도 “가나안“ 님들께서는 예전에 교회에서 겪은 상처와 실망등이 생각나면 몸서리를 치실지모르겠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여전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이미 교회의 일원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부르심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주어진 값비싼 사랑의 댓가입니다. 그러기에교회가 몸살을 앓고 내가 상처를받을 때 사실 가장 상처를 받는분은 우리보다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요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제가 주를사랑합니다” 라는 찬양과 고백을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사랑이 사람사랑을 통해서 확인되지 못하면 의심됩니다. 그것은“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열매로 확인된다” 는 사실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밉지만 주님은 사랑합니다” 는 신자에게 생각해봐야할표현입니다. 기독교 사랑은 낭만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기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연약해서 친가족조차 사랑하기가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형제간에도 수시로 다툽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가족구성원이기에 우리는 미워도, 힘겨워도여전히 사랑합니다. 교회도 가족입니다. 주님께서 사랑과 믿음으로그렇게 만드셨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워도 아파도 사랑합니다.

그 주님의 부르심 (사랑) 은 앞으로도 우리에게서 아픔을 제거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픔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해야만 하는존재임을 확인시킬 뿐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의인이 아닌 죄인이 모이는 곳이고 나 역시 그 중에 한명임을 깨닫게 만들 것입니다. (눅5:32) 그런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성장해갑니다.

그런 과정이 주님이교회를 세워가시는 방식임을 기억하기에 상처투성이어도 용서와 이해와 사랑을 갈구합니다. 그리고그것이 제가 “가나안” 님들께 “가나안”을 재고하시라는 이유입니다

<김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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