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빅 데이터 시대, 숨을 곳은 없다

2015-10-1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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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희 / 논설위원

뉴욕에 사는 딸이 며칠 전 전화를 해서 크레딧 카드를 좀 빌려달라고 했다.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서 보니 둘 다 지갑을 안가지고 왔더라는 것이다. 전화로 내 카드 번호를 불러주고, 그 번호를 딸이 계산대 직원에게 불러주며 식사 값을 지불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카드 결제가 거부된 것이다. “카드에 아무 이상이 없는 데 …” 하다 보니 그곳이 뉴욕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LA에 있는 사람이 뉴욕의 식당에서 카드를 쓴다? 수상하다. 사기일 수 있다”는 판단을 ‘누군가’ 내렸을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곧바로 온라인 뱅킹 사이트로 들어가 보니 카드는 이미 사용이 잠정 금지되어 있었다. 의심스런 결제 시도가 있었으니 그게 본인 혹은 본인의 허락 하에 시도된 것인지 확인하라는 내용이 뒤따랐다. ‘확인’ 클릭을 하자 사용금지 조치를 바로 해제하겠다는 안내문구가 떴다.

이어 이메일을 열어보니 똑같은 내용의 메일이 두 개나 들어와 있었다. 메일을 보는 중에 전화가 울렸다. 크레딧 카드 회사 전화였다. 같은 메시지 - ‘확인하라’ 였다. 온라인 뱅킹 사이트, 이메일, 전화 - 세 군데의 경고에 모두 응답하고, 카드는 정상으로 회복이 되었다.


보안시스템이 이렇게 잘 돼 있으니 ‘안심이다’ 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강하게 엄습해오는 느낌은 ‘소름 끼친다’였다. 내 카드가 도용당하지 않도록 실시간 감시하는 보안체제의 이면은 바로 나에 대한 관찰/감시이기 때문이다. 요즘 뉴욕 타임스건 워싱턴 포스트건 온라인으로 신문을 보다보면 선풍기 광고가 바로 따라 붙는다. “가을이 되어서 여름상품 세일을 하나?” “내가 선풍기에 관심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한다면 너무 순진한 게 된다. 얼마 전 선풍기를 사려고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여는 사이트마다 선풍기 광고들을 올리도록 ‘누군가’가 조치를 취한 것이다. 세상에서 입력되는 모든 정보를 한순간에 취합하고 분석해 목적에 따라 이용하게 만드는 막강한 그 무엇, 바로 ‘빅 데이터’이다.

빅 데이터 시대가 되었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말한 ‘빅 브라더’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오웰은 소설 ‘1984년’에서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텔레스크린으로 개개인을 감시함으로써 사회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거대 권력자 혹은 체제로서 ‘빅 브라더’를 그렸다. 10~2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요즘 우리의 삶의 환경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오웰의 상상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정보가 폭증하는 시대이다. 지금 세상에 떠도는 모든 데이터의 90% 이상은 지난 2년 사이에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 정보의 전달 속도가 정보의 양을 결정한다. 200년 전 호주에서 영국으로 편지를 보내려면 6개월이 걸렸다. 150년 전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편지 한통 보내려면 몇 달이 걸렸다. 대륙횡단 철도가 완공된 1869년 이전 우편배달부는 말을 타고 대륙을 횡단했다. 항공우편이 생기면서 미국과 한국 사이 우편물이 10일 내외에 배달된 것은 대단한 발전이었다. 이렇게 우송된 편지들은 각자 개인의 정보로 남았다. 정보의 총량은 보잘 것 없었다.

지금은 천문학적 규모의 정보들이 매 순간 만들어지고 있다. 특정 전문가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뱅킹을 하고 구매를 하며, 이메일을 쓰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트위터나 카톡을 하고, 스마트 폰을 쓰는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모두 데이터 생성 작업이다. 이렇게 모아지는 엄청난 분량(Volume)의 다양한(Variety) 정보들을 빠른 속도(Velocity)로 수집, 저장, 관리, 분석하는 기술 혹은 3V를 갖춘 정보의 집합을 빅 데이터라고 한다. 이 시대의 ‘빅 브라더’이다.

딸에게 빌려주려다 실패한 크레딧 카드를 지난 봄 내가 뉴욕에 가서 썼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빅 브라더’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카드로 뉴욕 행 비행기표를 끊었고, LAX 공항에서 아침식사도 했으니 이 사람이 지금 뉴욕에 있겠구나 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끊임없이 지켜보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얀 마룻바닥 위를 진흙투성이 발로 마구 돌아다니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하는 모든 행동이 그렇다. 검색을 하든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든 댓글을 올리든 ‘발자국’이 남는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디지털 발자국’이다. 빅 데이터 시대에 우리가 숨을 곳은 없다. 트위터에 글 하나 잘못 올렸다가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면서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일들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말 조심, 행동 조심은 온라인에서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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