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번 째 스무 살’ (유정민 / 카피라이터)

2015-09-12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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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영 중인 한 한국드라마의 제목이 ‘두번째 스무살’이다. 40살이 넘은 엄마가 다시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한 내용의 첫 회를 보았다.

스무 살도 훨씬 어린 아이들과 한 강의실에 들어간 첫날, 팀플레이(그룹 프로젝트)를 위해 한 그룹에 끼어들자 학생들이 괴로워하며 슬슬 피하고, 어떻게 하면 같이 할 일을 줄일까 끼리끼리 뒷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있었다.

아... 그렇구나. 나도 얼마 전 가을학기 강의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동네 대학에서 가끔 회화 클래스들을 들어왔는데, 이번에 마음 크게 먹고 ‘이론’ 강의를 신청했다.


사실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기도 하고 강의는 많지 않아서 어린 아이들과 들어도 별로 어색할 일도 괴로울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론 강의는 그렇지가 않다.

첫날, 교수가 한학기의 강의 계획을 이야기 하면서, 매번 퀴즈를 보고 학기말 시험대신 그룹 프로젝트를 한다는 설명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 결혼했더라면 내 아이 나이가 될, 열여덟 열아홉의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엄마 또래 아줌마와 같이 앉아 강의를 듣는, 이 아이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상황을 본의 아니게 만들고 있는 내 입장도 괴롭다.

아니 왜 그룹 프로젝트인가? 내가 대학교 다닐 땐, 특히나 이런 교양과목들은 그저 리포트 써내는 게 다 였는 데, 어느새 세상이 이렇게 바뀐 건가?집으로 돌아와 이 과목 등록을 취소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한참이나 고민했다. 이날따라 읽어야하는 분량도 많고, 한국말로 잘 알던 용어들이 영어로 읽으니 머릿속에서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겉돌았다. 이러다간 만만한 게 본 대학과정 과목도 못 듣고 마나... 이런저런 생각이 어지럽게 지나갔다.

오랫동안 ‘내 일’처럼 해온 일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벌써 몇 년 째, 하던 일과 해보지 않은 일을 동시에 쥐고 있으니, 하던 일은 느슨해졌고 해보지 않은 일은 진전이 더디다.

거기다 나를 막는 건 두려움이다.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쩌지 ... 두려워서 주저한다. 하지만 결국, 포기는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에 눈 딱 감고 어린 아이들보다 잘하는 것으로 작전을 바꿨다.

첫 번 째 퀴즈, 세번 네번 읽고 갔기에 당연히 A. 우연히 마주친 한인학생과 말을 트고, 그 아이와 같은 그룹에 들어가는 것으로 해결. 미국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정규 학교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사실, 한국에서의 학위와 상관없이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는 ‘언어’의 부족함이, 늘 마음속에 가득했었다. 그래서 좀 불편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야 하더라도, 늦은 나이에 학위를 따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나를 안락함 밖으로 밀어낼 생각이다.

아직 드라마와 같은 장면은 없었다. 다행히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 한명 더 있고, 또 미국에서는 나이에 대해 크게 민감하지 않아서 그런지 대놓고 나를 향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학생은 없다.

소설 ‘은교’에 나온 말,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를 기억하며, 젊고 싱싱한 아이들이 갖지 못한 나의 경험과 고민을 어떻게든 나눠주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의무처럼 하던 공부를 나이 들어 즐기며 한다는 게 뭔지, 다시 스무 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살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겨우 한 과목 강의 들으면서 이렇게 각오에 각오를 더하니 내가 두려움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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