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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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최우등 대통령’ 제16대 아브라함 링컨 (1)

2015-08-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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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환>

필자가 미국역사를 연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 미국에서 위가 제일 큰 대통령이 누구에요?” 라고 한국에서 조기영어연수를 하러온 똑똑하게 생긴 어린학생이 물어본다면 아마 필자는 엉겁결에 “떼끼 놈, 아직 80도 안된 아저씨에게 할아버지라니 ..” 지금도 ‘오빠’ 라고 부르는 젊은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라고 얼버무리고 말런지 모른다. 집에 와서는 “캬! 고놈 고약한 질문을 다하네” 라고 한번 중얼거릴 것이다. “고녀석이 체중이 350 파운드가 넘었었다는 Taft 대통령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난후 물어보지는 않았을 터이고” “그야 물론 아브라함 링컨 이지!” 라고 대답했었어야 할 것이었다.

미국역사를 열심히 읽으면서 펜실베니아에 살고 있는 필자의 고등학교 동문이 제63회에 나간 “최열등 대통령 제임스 부캐넌” 이란 글을 보고 “대통령을 ‘unfortunate’ 이라면 모를까 ‘최열등’이라고 등급매기는 법이 어디 있는가?” 라고 자못 훈계조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또 충고의 이메일을 받을 각오를 하고 링컨을 “최우등생”이라고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쓸 수밖에 없다. 미국을 위해서 제15대 “최열등생” 다음에 제16대 “최우등생”이 곧 뒤따랐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미처 다 헤아릴 수가 없다.


한 인간을 반론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공정하게 품평한다는 일도 어려운 일인데 한나라의 대통령을 반론 없이 평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링컨 을 최우등생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핏대를 올릴 미국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미국사람들은 가장 위대한 대통령들 네 사람을 벌써 오래전에 뽑아서 1927년에 시공하여 1929년의 대공항 때도 계속하여 1941년에 사우스 다코다에 있는 러시모어(Mt. Rushmore) 산에 있는 제일 큰 바위들을 통째로 깎아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아브라함 링컨, 디어도어 루즈벨트 등 네 분의 대통령들을 조각해 놓았다. 이제 남은 질문은 네 분들 중에 누가 가장 위대한 분이냐? 는 것이다. 필자는 당연히 링컨 이라고 생각한다.

링컨은 한 인간으로써 성공하고 자칫 쇠멸되어가던 국운을 바로 잡도록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사람들이 그가 태어난 것과 같은 환경이었거나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경력을 가졌다면 링컨 과 같은 성공과 업적을 이루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링컨의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는 점은 그의 언행에 관한 기록이나 남아있는 연설문 등을 보면 자신의 어려웠던 경험에서 본능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 차가운 세상에 대한 반발, 원망.증오감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어려웠던 경험들은 그의 마음을 도리어 넓혀주지 않았는가 싶다. 그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든 시련들을 좌절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드리고 극복함으로써 꾸준히 정상까지 한 계단씩 걸어 올라갔다.

출생, 청소년 시절의 성장 과정, 결혼생활, 자식복, 정치생활 등을 기준으로 해서 링컨의 일생을 재어본다면 그토록 불행했던 사람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일 셰익스피어가 링컨 을 일생을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연극으로 썼다면 그것이 ‘셰익스피어 최고의 비극’이라고 불렸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평생에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해보지 못한 아버지의 집에 태어난 미천한 출생, 어린 세 자녀를 두고 떠나간 어머니의 사망,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교육, 많은 사학자들이 인정하는 부인의 정신분열증, 유.초년 시절에 병사한 세 명의 아들들, 어려웠던 정치입문, 나라의 극단적인 분열, 미국역사상 최대의 사상자를 낸 남북전쟁, 가나안에 도착은 하였으나 입성은 허용되지 않았던 모세처럼 미국의 재통일을 이루자마자 암살되어야 했던 최초의 미국대통령 등 인간으로써의 비극적인 요소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골고루 타고난 사람이 링컨이었다.

그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큰아들 로버트의 외아들이 열여섯 살에 사망함으로써 링컨은 절손되었다. 또 한 가지 더 이 비극이 완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링컨의 미망인이 행복해져서는 안 된다. 그의 미망인 메리 토드 링컨 역시 처절한 비극으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링컨의 증조부가 영국에서 1638년에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손자 때까지 별로 성공해보지 못한 집안 농부의 아들로 링컨 은 태어났다. 링컨의 아버지 토마스가 여섯 살 때에 할아버지는 미국원주민들의 습격으로 아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되었으며 토마스는 여러 군데로 옮겨 다니며 농사를 지었으나 신통치 않았고 토지측량과 등기 등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던 시절에 소유권 분쟁에서 여러 번 패배하여 극빈한 생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들이 득표 전략으로 통나무집인 log cabin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진짜로 log cabin에서 태어난 사람은 링컨이 처음이라고 한다. 필자가 켄터키 주의 한 주립공원 안에 만들어 놓은 링컨이 태어났다는 통나무집의 모형을 본적이 있는데 다다미 8조 정도의 단칸 통나무집으로써 그 안에서 어떻게 대여섯 명의 식구가 살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링컨이 아홉 살 때에 후일 어려서 죽은 남동생과 누나를 남기고 어머니가 별세하였는데 이때부터 열 세 살 난 누나가 주부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 남편의 자녀 세 명을 거느린 과부와 재혼하였는데 링컨이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이 계모는 성품이 착한 분이었던지 링컨을 아주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계속 성공하지 못하였었고 링컨에게서 돈을 꾸는 등 부담이 되어 부자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링컨은 어려서부터 온 동네의 농사와 잡일들을 맡아 노예처럼 일해 왔었다고 하며 이 시절의 체험이 후일 링컨이 노예들의 참상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링컨은 독서를 즐겨서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는데 평생에 일 년밖에 학교를 다녀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 일 년이란 것이 어느 한 학년을 학교에 다녔다는 얘기가 아니라 학교를 몇 달간 다니다 자퇴하기를 계속해서 그런 기간을 통산하면 일 년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에 나갔으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연설에서 성경구절이나 성경의 정신 등을 자주 인용했던 것으로 보아 성경은 자주 읽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대웅변가는 아니었지만 청중들을 움직이는 연설을 잘하였다. 말이 조금 어눌한 편으로 연설을 시작할 때에는 조금 답답한 듯도 하였으나 이와 같은 어법이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연설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여 친분감을 느끼도록 하였으며 일단 연설에 열이 오르면 청중들을 움직이는 연설을 해내었던 듯하다. 그의 남아있는 연설문을 읽어보면 통산학력 일 년인 사람이 한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깊 은 생각들이 배어있고 시적인 표 현이 많은 데다가 단어들의 운률 (rhyme)도 잘 맞아 듣기에 아주 음악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성경도 잘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 시중에 흔히 쓰이는 쌍스러운 농담 등도 곧잘 연설에 썼다.

그는 6’ 4” 의 큰체격에다가 주먹 싸움질도 잘 하였다고 한다. 연방 하원의원으로 출마해서 선거연설 을 시작하려고 하다가 자기의 지지자가 군중 속에서 반대자들에게 곤욕을 당하고 있는것을 보자 연 설을 중단하고 쫓아가서 반대자들 에게 주먹세례를 퍼부운 후 돌아와 연설을 계속하자 청중들이 환호 하였다. 변호사개업중에는 사건의 성격을 가리지 않고 폭행 사건들까지 다 맡았다는데 배심원 들을 변론으로 잘 설득하여서 승소하는 일들이 많았으며 일리노이주의 대법원에서 그가 승소 한 재판의 판례들 몇 가지는 아주 유명한 것으로써 다른 주들의 대법원에서도 판례로 존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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