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인권 운동가 할머니 (김현정 / 가주한미포럼 사무국장)

2015-08-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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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7월말이면 워싱턴 DC, 뉴욕, 로스앤젤레스에서 의미있는 릴레이 행사가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방하원 121 결의안(일명 ‘위안부 결의안’) 통과 8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세 도시에서 열렸다.

피해자를 대표해서 이용수 할머니가 오셨다. 2007년 초 연방의회에서 증언을 하고, 이후 LA와 워싱턴 DC를 방문하여 미주한인들의 캠페인에 힘을 실어 주셨던 분이다. 할머니는 글렌데일 소녀상 설립 2주년을 겸하여 마련된 가주한미포럼 연례디너에 참석하고, 7월28일에는 DC의 연방의사당 레이번 빌딩에서 뉴욕 시민참여센터와 마이크 혼다의원 주최로 열린 위안부 결의안 통과 8주년 행사에 참석하셨다. 이어 7월30일에는 뉴욕에서 홀로코스트 피해자 할머니들과 3년 만에 재회의 감격을 나누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DC에서 예정되어 있던 결의안 8주년 행사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건물에서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미국 의원들과 만나는 일정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혼다 의원은 결의안 행사가 먼저라며 참석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약속했던 다른 의원들의 참석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DC 행사 이틀 전, 글렌데일에서 열린 가주한미포럼 디너에 참석한 아담 쉬프 연방하원 의원에게 이용수 할머니는, 의원의 손을 꼭 붙잡고, DC의 8주년 기념행사에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 좋은 쉬프 의원은 스케줄을 확인한 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더니, 실제로 DC 행사장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시간을 냈다는 말과 함께 일본의 역사인정과 여성인권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지지발언을 했다.

또한 주디 추 의원과 빌 파스크렐 의원도 참석하여, 반드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함께 해결하여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크를 잡은 할머니는 “이렇게 많은 동포들이 미국에서 너무나 열심히 수고해 주시는 데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처음에 증언을 시작했을 때 나는 단순히 피해자였기 때문에 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울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는 이제 전 세계 여성을 위해 전쟁과 성폭력이 없어지도록 싸우는 활동가이기 때문입니다!”할머니의 말은 이어졌다.

“제가 이렇게 먼 길을 마다않고 다니면서 힘든 증언을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아이들만은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옳은 역사를 가르치고 배워 주세요. 그래야 다시는 우리가 겪었던 끔찍한 그 일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여든 여덟의 이용수 할머니는 전쟁이 끝났을 때 만 열여섯이었다. 지금도 중국, 대만,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등에는 그 끔찍한 상처를 드러내지도, 이용수 할머니처럼 당당하게 외치지도 못하고, 소외와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많이 있다.

단 한번의 성폭행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기고, 많은 성폭력 피해여성들은 요즘도 가해자를 신고하지 못하고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실을 기억할 때 피해자로서 고통스러운 증언을 마다 않고, 이제는 여성운동가로 거듭난 할머니의 용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제 우리 몫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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