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와 함께 보낸 봄 (유정민 / 카피라이터)

2015-04-25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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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이 넘은 엄마는 한국에 잠깐 다니러 온 딸을 위해 날마다 아침을 지었다. 내가 하겠다고 해도 물리치며, 딸이 잘 먹던 음식을 기억하고 있는 엄마는 하나라도 더 해서 먹이려고 바쁘게 움직였다.

봄이 막 시작된 3월 말, 나는 막 무쳐낸 엄마의 달래무침에 밥 한 그릇을 싹 비워냈다. 조개를 넣어 냉이 된장국을 끓여주며 엄마는 말했다. ‘“네가 좋아 할 것 같아 어제 오다가 장에 들렀다.” 거리가 꽤 되는 길을 혼자 걸으셨던 것이다. 밥을 할 때마다 헌 밥은 당신 그릇에 담고 새 밥을 내게 주는 엄마와 실랑이를 했다.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무슨 냄새냐고 물으니 지난겨울 소꼬리를 고느라 솥에 올려놓고는 잠이 들었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솥이 새까맣게 타있더라는 것이다. 집안의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엄마는 그날 밤 추워서 소꼬리 끓이는 것을 잠시 잊고 방에 들어가 누우셨다 했다.


집안에 밴 탄 냄새가 처음에는 코를 찌를 듯이 괴롭더니 그 후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겨울 밤 가스 불을 켜놓고 혼자 잠들었을 엄마만 떠올랐다.

밥상에 마주앉아 엄마는 ‘이렇게 둘이 먹으니 좋구나’ 하셨다. 나는 괜시리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엄마처럼 아무 걱정 없이 편한 노인이 어디 있느냐고, 혼자서도 맛있게 드시라고 대꾸 아닌 대꾸를 했다.

엄마와 함께 간 온천에서는 웬만해서 좋다, 맛있다 안하시는 칭찬에 인색한 엄마가 처음으로 감탄의 말을 쏟아내셨다. 정말 좋구나, 이렇게 좋을까, 세상에, 왕비가 된 것 같구나... 감탄도 하고 티격태격 말다툼도 하며 여행은 이어졌다.

여행 가방이 말다툼을 불러일으켰다. 여행갈 짐을 싸며 엄마는 작은 가방 하나에 다 넣어서 편하게 가자 하셨고, 나도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집을 나섰는데, 첫날 들른 가게에서 우리는 말싸움을 하고 말았다. 기념품 몇 개를 고르다 가방이 너무 작아 아무것도 더 넣을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한 엄마에게 화풀이를 했고, 엄마는 내가 좋다 했다고 내 탓을 했다.

그렇게 티격태격 중간 중간 말싸움을 하면서 여행은 이어졌다. 뜨끈한 온천에 들어가 함께 몸을 씻으며 즐거웠고, 코스로 나오는 요리에 감탄하며 입맛을 다셨고, 차가운 맥주잔을 부딪쳤고, 함께 노곤해진 몸을 누이고 쉬었다.

올 초 생일에 나는 혼자 미역국을 끓여먹었다. 혼자 미역국을 먹으며 미역국의 의미를 처음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낳고 몸을 풀며 드셨을 그 국을 생일 맞는 자식이 먹는 이유는, 나를 키우느라 애쓰고 바친 엄마의 세월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내가 먹는 미역국은 내가 세상에 혼자 떨어진 것이 아님을, 지금의 나로 살 수 있게 해준 엄마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엄마는 나 어릴 적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지 못한 걸 미안해 했다. 그걸 미안해하는 엄마는 그때 사는 게 너무 바쁘고 힘들었으며, 그때 사랑한다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는 그땐 그런 것조차 사치였음을, 내 생일에 엄마를 생각하며 엄마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꿈같이 지나간 엄마와의 봄이 이제 내 안에 남았다. 다시 마주볼 날까지 또 그리움 가득한 딸과 엄마로 살다가, 만나면 다시 티격태격 말다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얼마나 남았을까. 몇 번의 계절을 더 엄마와 함께 맞을 수 있을까.

날마다 마음은 태평양을 건너 혼자 밥 먹는 엄마의 식탁으로, 혼자 잠드는 엄마의 방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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