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롱비치의 한 고등학교에서 하는 뮤지컬을 보러 갔었다. 고등학교 과정 안에 예능집중반이 따로 있어서 그 아이들이 준비하고 올리는 극이었다. 전에 했던 앤 프랭크 연극도 소품, 의상, 연기가 생각보다 놀라웠던지라 기대를 안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 본 뮤지컬들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나에게 기대는 어느 수준을 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런데...! 이 아이들이 정말 고등학교 10학년, 11학년, 12학년 아이들인가 싶을 만큼 놀라운 연기와 발성, 노래, 춤, 코러스, 거기다 오케스트라 반주까지 더해져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주인공들의 노래는 영화‘레미제라블’에서 유명한 배우들이 한 노래보다 훨씬 나았고, 각 역마다 몰입하는 연기와 의상, 세 명의 코러스가 극의 흐름을 알려주는 중간 삽입은 대단했다.
처음 미국에서 초등학교 발표회를 보러갔던 때가 생각난다. 악기를 배운지 얼마 안된 4,5학년 아이들이 하는 연주를 듣고 앉아있자니 속으로 웃음이 터지는데 부모들은 진지하고 자랑스러운 얼굴들을 하고 있어 놀라웠다.
그리고 내 초등학교 6학년 때, 운동회에서 춘 부채춤이 기억났다. 모두 한복을 맞춰 입고 진짜 반짝이 부채를 들고 춤을 춘다고 했다. 매일, 매일, 뙤약볕, 먼지 나는 운동장에서 연습을 했다. 지겹게 했다. 옷도 모두 맞춰 입었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 불만이 있다는 소리도 들렸다.
운동장을 가득 채운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부채춤을 출 때 부모들은 쉬지 않고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에 힘이 나 춤도 더 열심히 추었던 것 같다.
또 중학교 때는 해마다 합창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반마다 곡을 정해 연습을 쉬지 않고 했다. 아침, 오후, 시간 날 때마다 모여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합창대회에 나오는 노래는 꽤 들어줄만한 노래들이었다. 당연히 1,2,3 등을 뽑아 상을 주었다.
그러니 내 기억 속에서는 무엇을 하던 죽어라 연습해서 어느 수준은 되어야 무대에 올리는 것이 발표회의 기본이었다.
여기는 달랐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발표를 위해 따로 격한 연습을 하지는 않는다. 배우는 과정을 통해 마지막 날 보여줄 뿐이다. 부모는 내 아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 수 있고, 하나도 모르던 아이들이 이렇게 성장했으니 장하다고 격려부터 한다. 이건 문화 충격이었다.
버벅 거려도, 잘 못해도,칭찬을 먼저 하는 문화. 못했다고 비웃거나 조롱하지 않는 문화. 저렇게 못하는데도 아무도 웃지 않네...하며 돌아봤을 때 발견한 부모들의 흐뭇한 얼굴은 나 스스로 얼마나 밀어 붙이고, 남보다 잘 해야 하고, 1등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 젖어있었는지를 깨닫게 했다.
지금, 아이는 2년째 트럼펫을 분다. 처음엔 방구소리만 내더니 이제는 제법 곡을 끝내고 발표회 때 보면 다른 아이들과 합주도 한다. 그러나 이젠 성급하지 않다. 이렇게 더디 가다가 고등학교에 가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그 결실을 만들어 낼게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