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삼각형 모양 전통가옥, 동화 같은 그림…

2015-02-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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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야마현 고카야마 <하>

이 작은 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도야마현의 대표 술을 만드는 산쇼라쿠(三笑樂) 주조회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정문 처마에 커다란 등 모양의 원구가 매달려 있다. 삼나무 잎으로 만든 장식이다. 푸른 삼나무 잎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술이 익어가는 정도를 외부에 알리는 표식이다. 술 담는 가정마다 달아놓아 옛날엔 누구 집에 술이 얼마만큼 되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술의 질은 숙성기간이 아니라 재료에 좌우된다. 60% 도정한 쌀로 만든 다이긴조를 최고로 친다. 특히 효고현의 야마다니시키(山田錦) 쌀이 다이긴조를 만드는 최고의 원료로 우대받는다. 이곳에선 도야마와 효고에서 나는 쌀에 산에서 내려오는 자연수를 사용한다. 지하수는 광물질이 많아 부적합하다. 눈 덮인 산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오는 맑은 물이 술을 빚기 좋은 조건이다.


■ 전통과 자연이 빚은 동화같은 마을, 아이노쿠라


최종 목적지 아이노쿠라(相倉) 마을엔 어둑하게 날이 저물녘에야 도착했다. 이 마을 20여채의 집은 모두 전통 합장양식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단순히 보존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사람이 거주하고 민박도 운영한다. 1박2식에 1인당 1만2,000~1만5,000엔으로 비싼 편이지만 세계 문화유산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매력에 예약이 힘들만큼 인기가 많다.

일행이 묵게 될 쇼우시치가(庄七家)에 도착하자, 안주인이 방 한가운데 설치된 전통화로(이로리)에 곤들매기를 굽고 녹차를 내놓는다. 곤들매기는 송어과로 강 상류의 맑은 물에만 서식한다. 움츠렸던 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방안에 온기가 가득 퍼진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마을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 앞 언덕까지 약 400m에 이르는 길이 온통 눈밭이다.

드디어 집집마다 발갛게 등이 켜지고 사위에는 짙푸른 어둠이 깔렸다. 지붕에서 떨어진 눈덩이는 1층을 완전히 가리고 눈밭에 2~3층만 올라온 삼각형 모양의 전통가옥들이 동화같은 그림을 만들었다. 소담스럽게 눈송이를 인 삼나무 숲이 풍경의 방점을 찍는다. 길은 이웃마을로 이어지지만 더 이상의 풍경은 없을 듯하다.

방으로 돌아오니 저녁식사가 차려졌다. 화로에서 구운 곤들매기 구이와 쇼바, 송어회, 표고버섯과 고사리탕, 무절임과 두부 등 한 눈에도 정갈하고 건강이 전해지는 밥상이다. 화로를 가운데 두고 1인상이 둥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한 상에 둘러앉아 서로 마주앉아 주거니 받거니 반주를 곁들이는 우리 식사와의 차이점이다.

밤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더 없이 맑은 공기 속에 달빛이 희미한데 또 속절없이 눈이 내린다.


어떠한 소음도 철저히 차단된 깊은 산중에 그 고요함마저 눈송이에 흡수돼 떨어진다. 칠흑 같은 어둠에 비할 완전한 고요다.

화장실과 세면대는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개조했지만 다다미방은 그대로다. 방은 사면이 넓은 창문이다. 개스난로가 있지만 방안 공기에는 냉기가 감돈다. 그러나 두꺼운 요를 깔고 두 겹의 이불을 덮은 잠자리엔 온기가 가득하다. 뜨거운 물주머니인가 했는데 목침처럼 단단하다.

아침까지도 뜨끈뜨끈하다. 마메단앙카, 일종의 휴대용 목탄난로다. 주먹보다 작은 목탄을 피워 도시락 모양의 기구에 넣고, 세 겹의 베개 닢으로 감쌌다. 목탄을 피울 수 없는도시에선 쓸 수 없지만 시골 농가에선 겨울 필수품이란다.

밤새 내린 눈이 아침 햇살에 눈부시다. 이 지역 눈은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흩날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도로와 수직으로 깎은 제설면은 지층의 형성과정을 보듯 가로선이 선명하다. 고카야마 산촌마을은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오래된 미래’다.


■ 4월을 기다리는 다테야마연봉 눈 협곡

도라에몽의 시간여행에서 빠져 나오듯 도야마시에 도착하자 순백의 세상은 다시 잿빛 도시로 변해 있었다.

건물 색깔에 대한 특별한 규제는 없지만, 튀는 것을 꺼리는 일본인의 특성이 반영된 컬러다. 도야마역 바로 앞 비즈니스 호텔 15층 식당에 들어서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엔 한국의 조그만 소도시에도 흔해빠진 고층 아파트는 없다. 이 정도면 도야마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넓게 펼쳐진 도야마 분지 지평선 부근으로 설산이 길게 도시를 감싸고 있다. 다테야마(立山) 연봉이다.

해발 3,000m 안팎의 고봉들이 도야마현 동남부 지역을 띠처럼 둘러싼 모양새다. 흰 눈을 빼면 고봉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분지가 넓어 산이 멀기도 하지만, 가늠하기 힘들만큼 가로로 길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다테야마 산악지역으로 가는 도로는 4월15일에야 열리고 6월15일까지 설산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일본에서도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20m 높이의 눈 협곡 여행이다.

그 후 짧은 여름과 가을에 거쳐 알펜루트 트레킹도 즐길 수 있다. 고카야마 산촌을 지나며 한국에선 보기 힘든 많은 눈을 봤지만 아마도 그건 예고편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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