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준 대사의 명연설

2015-01-0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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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우 / 변호사

국제연합(UN)의 최고 중요부서는 안전보장이사회다. 2차대전 전후 UN이 창설되었을 때 승전국들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그리고 (장개석의) 중국이 영구적인 상임이사국들로 출발한 것이 안보이사회다. 그 후 2년 임기의 비상임 이사국들이 열나라 추가되었지만 그들에게는 발언권과 의결권은 있으되 상임이사국들 고유의 거부권은 없다. 북한의 반인류적인 인권유린 범죄로 김정은 등을 국제범죄 재판에 회부시켜야 된다는 UN 인권위원회의 건의가 총회에서 의결된 후 안보이사회 올라갔는데 중국이나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될 것이라는 관측만 보아도 상임이사국의 위상을 짐작하게 된다.

6.25 남침 전쟁 때에는 당시 소련의 말리크 유엔 대사가 안보이사회의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UN군의 파병 안건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이 10월24일을 유엔의 날로 기념해왔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한국이 2012년부터 14년까지 안보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들 중 하나였던바 오준 유엔대사가 12월22일 이사회에서 한 연설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유튜브 등 인터넷과 한국 신문들의 비디오 소개에서 본 것을 소개한다.

“의장님, 오늘이 제가 안보리 회의에 참석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운을 뗀 오 대사는 원고에 의존하지 않은 즉흥 연설로 계속 청중을 바라보면서 약 2분간 차분한 설명과 호소를 전달한다. 보도에 의하면 약 6분 동안은 준비된 원고를 사용하여 연설한 후에 그리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읽는 것만으로는 북한에 대한 절박하고 특별한 감정을 전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며 “본부(외교부)에 개인적인 소회를 발언하겠다고 보고해 승낙을 얻었다”는 것이 오대사의 설명이다.

숙연한 표정의 오대사는 “2년 전 안보리 이사국으로 참여할 때 첫 회의 주제가 북한 미사일과 핵문제였습니다. (임기가 끝나는) 오늘 마지막 회의에선 북한 인권을 다루고 있습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겠지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은 ‘아무나(anybodies)’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엔 북한 조사위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며 가슴이 아프고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은 비극을 겪은 듯 눈물을 흘립니다. 의장님, 이제 저는 안보리를 떠나며 북한에 있는 무고한 형제, 자매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합니다. 강제수용소에서 아무 죄 없이 고통 받는 북한의 형제자매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부디 훗날 오늘을 되돌아볼 때 ‘북한 주민들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참석한 기자들의 보도에 의하면 계속 청중을 바라보는 오 대사의 비장한 표정에 다른 14개 이사국 대표들은 물론 방청석에 앉은 70여개국 외교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언론인 겸 인권운동가 출신인 사만사 파워 주유엔 미국대사는 간신히 눈물을 참고 있는 숙연한 표정이었다. 그는 오대사에게 “지금까지 안보리 회의에서 들은 연설 중 최고의 연설이었다”면서 미국 대표부 직원들에게 오대사 연설의 동영상을 꼭 찾아보라고 권고했노라고 부언했다는 것이다.

오대사는 모친이 개성 태생이고 장인이 함경도 출신이라 자신도 이산가족이라고 어느 기자에게 밝혔다. 그는 “6.25 전쟁 때 단신 월남한 장인이 10년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북에 남은 가족을 그리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장인은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빠짐없이 신청하셨지만 번번이 추첨에서 탈락해 돌아가실 때 한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가 1978년 외교관이 된 후 영국과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서 다져진 영어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 남북의 분단이 그의 가족사에 반영된 배경이 그 같은 훌륭한 즉흥 연설의 근저를 이루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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