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 교수 이야기

2014-12-0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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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훈 논설위원

19세기 초부터 20세기 후반까지 200년에 달하는 기간은 서구 열강의 시대였다. 한줌밖에 안 되는 서유럽의 몇 나라가 온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자기 나라보다 몇 배에서 몇 십 배나 큰 나라들을 식민지 혹은 준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 나라는 영국으로 캐나다에서 호주, 남아프리카와 인도, 중동 등 세계 곳곳에 식민지가 없는 곳이 없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은 이 때 붙었다. 유럽 서쪽 변방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하던 영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첫 번째 나라라는 역사적 위업도 이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가들은 선진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영국의 기술력이야말로 대영제국을 떠받친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남보다 월등한 기술을 바탕으로 양질의 공산품을 대량 생산하고 가장 성능이 뛰어난 무기를 만들 수 있었기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 영향권에 있던 동양 각국이 공자와 맹자 말씀 공부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서양에서는 수학을 연구했다. 서양 최초의 대학으로 꼽히는플라톤의 아카데미 문 앞에 “기하를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을 정도로 일찍 수학의 중요성에 눈 뜬 유럽인들은 천재 수학자 가우스의 말처럼 수학을 “학문의 여왕”으로 대접했다. “자연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졌다”는 갈릴레오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18세기 단연 세계 1위였던 영국 자연 과학의 밑바탕에는 탄탄한 수학 실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국의 명문 캠브리지 대학에서 최고 권위로 인정받는 교수는 철학도 문학도 아닌 수학 교수였다. 1664년 헨리 루카스가 출연한 돈으로 만들어진 루카스 석좌 교수는 지금까지 모든 교수들이 앉고 싶어 하는 선망의 자리로 남아 있다. ‘20세기의 뉴턴’으로 불리며 최근 그 일생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스티븐 호킹이 바로 그 루카스 석좌 교수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호킹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있다. 바로 초대 루카스 석좌 교수를 지낸 아이작 배로우다. 당시 최고의 영문학자이면서 수학자였던 그는 32세라는 창창한 나이에 루카스 석좌 교수에 임명됐다. 그리고는 운명처럼 자기보다 12살 어린 대학생 아이작 뉴턴을 만난다.

뉴턴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본 그는 39살의 한창 나이에 “네가 나보다 낫다”는 말과 함께 루카스 석좌 교수자리를 27살의 뉴턴에게 넘겨주고 은퇴한다. 배로우 같은 선생이 있었기에 뉴턴 같은 천재가 나올 수 있었고 뉴턴 같은 천재가 있었기에 유럽 변방의 소국이 세계를 제패한 제국이 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최근 한국에서는 잘 나가던 한국최고 명문대 수학 교수가 10여년간 교수라는 알량한 권력을 이용해 제자들을 성추행하다 현직 교수로는 처음 성추행 혐의로 체포되는 망신을 당했다. 이 학교 한 음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공연 티켓을 강매하고 여학생들 뺨을 동네북처럼 때리다 쫓겨난 적도있다.

한국 교육과 미국 교육의 차이가 여럿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교육이 교수의 권위를 신주단지처럼 대단한 것으로 여긴다면 미국은 이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학문 발전을 위해 필요한 행위로 보호한다는 점이다.

교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외는 나라와 스승의 업적을 뛰어넘는 것을 그에 대한 최대의 경의로 여기는 나라, 둘 중 어느 곳이 발전할 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세계에서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이 어째서 지금까지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하나도 내지 못하고 있는가도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

한국의 교수들은 아이작 배로우와 “그는 성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던 세례 요한의 말을 항상 머릿속에 담고 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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