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먹도끼… 동물벽화… 30만년을 거슬러 구석기인들과 마주하다

2014-12-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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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로 떠나는 경기도 연천 전곡리 여행

▶ 스카이워커서 본 늦가을 재인폭포 풍광 일품

주먹도끼… 동물벽화… 30만년을 거슬러 구석기인들과 마주하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 있는 구석기인의 사냥 모형이다. 구석기인이 손에 들고있는 것이 바로 ‘주먹 도끼’다. 왼쪽 위쪽에서 노려보고 있는 것이 지금 하이에나의 선조 격인 점박이 하이에나다. 오른쪽 위쪽에는 넙적큰뿔사슴과 검치호랑이가 서로 대치하고 있다.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하면 구석기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살았던 30만년 전이라는 시기는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일까. 서울의 대표적인 선사(先史) 유적인 ‘서울 암사동 유적’이 겨우 7,000년 전의 작품일 뿐이다.

인류가 1만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서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것이 30만년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을까. 인류는 몇 번의 빙하기를 포함해 수많은 치명적인 재난을 겪었다. 지금까지 후손을 남긴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30만년 전에는 인류 진화 단계상 ‘호모에렉투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이 우리 용어로 ‘직립원인’ (直立猿人)이라고 번역되는 것처럼 엄밀한 의미에서는 ‘사람’이 아니다. 아직 원숭이에 가깝다. 하지만 생각하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와 멀지 않았다. 바로 30만년 전 구석기 시대의 자취인 ‘연천 전곡리 유적’을 이르는 말이다.


# 구석기로의 체험 시간여행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의 전곡선사박물관 옆의 야외체험관에 20여명의 학생들이 몰려 있다. 한 학생이 학예사의 도움을 받아 모룻돌에 차돌을 힘껏 내리치고 있다. 힘이 약한지 아니면 돌이 단단한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수차례 시도한 후에야 돌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학생은 학예사가 건네주는 가죽을 남은 돌로 잘라봤다. 이 학생이 들고 있는 돌은 인근 한탄강변에서 가지고 온 차돌이다. 바로 ‘주먹도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행사는 전곡선사박물관이 구석기인들의 생활체험을 위해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마치 선사시대로 돌아온 느낌이다. 이곳에서는 선사시대 방식으로 나무와 가죽 등을 이용해 막집 짓기, 선사시대의 도구인창을 이용해 사냥하기, 유물발굴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선사박물관 건물도 그 자체로 장관이다. 건물 외벽에 수만장의 스테인리스 판을 비늘처럼 이어 붙인 모습이 마치 타임머신을 연상시킨다.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다. 건물 내로 들어가면 과거 여행이 현실화된다. 바닥에 표시된 ‘시간의 선’을 따라 상설 전시실로 이동하면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이라는 주제로 화석 인류들이 행진을 한다.

가장 오래된 인류로 알려진 700만년 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보통 ‘투마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30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70만년 전),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까지 모두 14점의 원시인류 모형이 타원을 그리며 진화 순서대로 전시돼 있다.

바로 옆에는 매머드의 아래턱뼈로 울타리를 치고 입구는 어금니로 아치를 만든 집이 있다. 들소·말·사슴 같은 야생동물과 추상적인 문양, 손바닥을 찍은 그림 등이 그려진 동굴벽화도 시선을 끈다. 모든 것이 실제처럼 보이는데 마치 거대한 동굴 속을 탐험하는 듯하다.


선사박물관을 나오면 연천을 찾는 사람들의 주요 목적지인 ‘연천 전곡리 유적’이 펼쳐져 있다.

한탄강을 따라 면적이 무려 80만㎡다. 지난 1978년 처음 발견돼 20여차례의 발굴조사를 했고 그 결과 30만년 전으로 연도가 거슬러 올라가는 주먹도끼·사냥돌·긁개·홈날·찌르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수거됐다.


# 세계 고고학사를 새로 쓴 대발견

다른 유적지처럼 전곡리 유적도 우연히 발견됐다. 하지만 그 영향은 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들만큼 컸다.

1978년 1월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병사 그레그 보웬은 전곡리의 한탄강 유원지를 찾았다. 강변을 걷던 그의 시선에 이상하게 생긴 돌 하나가 들어 왔다. 보웬은 바로 이것의 중요성을 알아봤다. 그가 미국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것은 한국사에는 행운이었다. 주변에서 주먹도끼와 긁개 등도 발견했다. 전곡리 유적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견된 돌 중에 일부가 30만년 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감정되면서 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20여차례 발굴조사 끝에 아슐리안 주먹도끼 50여점을 비롯해 6,000여점의 구석기 유물이 수거됐다.

전곡리 유적이 발견되기 전만 해도 세계 구석기 문화와 관련해 구석기 2원론이 주류였다. 같은 구석기시대라도 보다 발달된 형태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사용한 유럽·아프리카 지역과 덜 발달한 형태의 ‘찍개’를 사용한 동아시아 지역으로 구분됐다. 하지만 전곡리에서 주먹도끼는 구석기 2원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세계 고고학사를 다시 쓰게 된것이다.

다만 이런 전곡리 구석기를 사용한 사람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160만년 전부터 25만년 전까지 전 세계에 분포한 호모에렉투스가 주인공이라는 의견이 다수인 가운데 40만~25만년 전에 처음 등장한 호모사피엔스라는 주장도 있다.


# 재인폭포·조선왕가 등 풍부한 자연·전통유산

차를 돌려 북동쪽으로 연천읍 고문리에 가면 협곡 사이로 거대한 폭포를 볼 수 있다. 재인폭포라는 이름의 이 폭포는 현무암 바위가 깎여 이뤄진 협곡 사이로 18.5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데 한탄강과 근처 보개산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절경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재인폭포가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지난해 5월에 완공된 전망대 때문이다. 27m 높이에서 재인폭포를 볼 수 있는 스카이워커 형태의 전망대에 서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너비 3m, 길이 1.4㎞의 산책로는 덤이다.

다만 요즘은 가을 가뭄으로 폭포의 수량이 줄어 아쉬운 점은 고려해야 한다. 재인폭포를 보고 돌아서 나오면 조선왕가에서 사용했던 전통 한옥을 볼 수 있다. ‘염근당’ (念芹堂)이라고 불리는 이 집은 바로 고종의영손으로 역대 왕의 종묘제례를 관장했던 황족 이근(李芹)의 고택이다.

1800년대에 처음 세워졌고 1935년에 99칸으로 재건된 왕실가의 전통한옥이라고 한다. 원래 서울 명륜동 문묘 옆에 있었지만 도시개발 과정에서 이곳 연천읍 고문리로 이전했다. 2008년 약 5개월 동안 트럭 300대 분량의 이사가 이뤄졌고 이후 27개월의 공사를 마친 이후 2010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복원됐다.

이외에도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안보관광지로 태풍전망대·열쇠전망대가 있고 고대산도 등산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 한탄강 오토캠핑장

어떤 사람들에게 연천의 상징은 전곡리 유적도 아니고 재인폭포도 아니다. 바로 국내 3대 오토캠핑장중 하나로 불리는 ‘한탄강 오토캠핑장’이다. 적어도 국내 캠퍼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2008년 개장한 한탄강 오토캠핑장은 국내에서 조성되고 있는 캠핑장의 본보기다. 아름다운 한탄강 물줄기를 옆에 끼고 전곡리 선사유적, 축구장, 자전거 대여점 등이 있어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으로도 거의 완벽하다. 넉넉한 캠핑 사이트와주차공간도 다른 캠핑장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글·사진(연천) 최수문 기자>
chs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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