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베(Zelve) 지하도시
겔수스 도서관(The Library of Celsus)두란노 서원
터키(Turkey)
터키는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곳으로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수많은 종족들이 투쟁을 벌여 왔던 곳으로 특별히 3대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가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크게 번성하였다 특히 소아시아 지방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AD 313 년에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옛 문명의 발상지였던 유브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따라 여러 인류가 살아온 알렉산더 제국의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그리고 이슬람 문명의 본산인 오스만 등이 이곳을 거쳐 가면서 이로 인하여 터키 전역에는 역사적, 종교적, 많은 유물이 터-키 전역 곳곳에 산재해 있다 .
터키의 영토 면적은 78Km2로서 남한의 7.5배에 달하는 크기이며 북쪽으로 흑해, 남쪽과 서쪽에 지중해와 에게 해협을 접하고 있으며 터키 국토의 일부는 유럽 대륙에 속하여 있고 대부분은 아시아 대륙에 속하여 있다. 해발 5,137m 높이의 아라랏산(노아의 방주가 발견 된 곳)을 포함하여 각각 2,000m 가 넘는 19개의 산이 있으며 큰 바다를 연상케 하는 큰 호수도 4개가 있다.
터키의 중요 관광지로 이스탄불, 갑바도키아, 에배소, 파묵칼레, 등 지중해 주변의 고대 도시들과 아브라함의 고향땅 하란, 욥의 무덤이 있는 쌍르울파, 기독교의 복음이 이방 세계로 전하여 지게 된 수리아 안디옥, 바울의 고향 다소,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 등재된 일곱 교회가 오랜 역사 속에서 자태를 뽐내며 기독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증거하여 주고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터키를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이라고 했으며 무엇보다 이슬람 국교인 터키가 지금까지도 끓임 없이 유적지를 발굴하여 복원 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특이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백문이 불여 일가견’ 지면을 통하여 소개 하는 것은 너무나 방대한 이곳! 꼭 한 번 방문을 권면 드리고 싶은 제 1 순위 지역이 아닌가 싶다.
갑바토기아(Cappadocia)
갑바도키아는 친절하고 사랑스런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터키 수도 앙카라(Ankara) 동남부 쪽으로 약 320km 떨어진 ‘네보쉐히르(Nevsehir’도시 일대의 광활한 고원지대로 소아시아 반도 중앙 고원에 평균 1,0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랜 옛날 ‘에르지에산(3914m’)의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바람의 풍화 작용으로 깎여나가 특이한 모양으로 형성되었다.
갑바도키아의 지질은 독특하여 푸석푸석한 사암지대로 이 사암을 파내기만 하면 훌륭한 주거 공간이 생겨났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 네로황제 박해를 피하여 약 250년 동안 이곳에서 피신하며 은둔 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이곳의 자연을 이용하여 지하도시를 건설하고 기도처, 동굴교회, 주택, 곡물창고, 학교, 등을 세우고 생활하였다. 그 후 로마 제국이 타락해 지면서 초대 교회의 신앙을 따르는 수도사들이 이곳으로 옮겨와서 수도원을 건설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이곳 주변에는 30여개의 지하 도시 중 ‘데린쿠유"(Derinkuyu)와 :카이마클러(Kaymakli)’가 유명한 도시로 불리고 있다. ‘"데린쿠유’ 는 지하 120m 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도시로써 현재는 지하 8층까지 일반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으며 초대교회 당시 박해를 피해온 기독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를 드렸던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가 있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요소마다 맷돌 모양의 큰 둥근 돌문이 있어 외부의 공격을 받을 때 돌을 굴러서 통로를 막아 안쪽에서 여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한 인근 집성촌 이라고 불리는 ‘괴뢰메’(Goreme)’의 지하 교회가 단연 돋보인다. 당시 수도사들이 오랜 세월동안 그린 성화들이 여러 동굴에 남아 있는데 갑바도키아 에서 가장 큰 ‘토칼르 교회’의 프레스코 벽화가 가장 잘 보존된 상태이고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모습이 교회 중앙에 그러져 있는데 예수의 일대기를 묘사한 40장면의 벽화 및 구약 성경을 소재로 한 벽화들이 인상적이다.
이곳의 천연적인 지형을 이용한 사람은 역시 기독교인 들이었다. 성경은 갑바도키아를(베드로전서 1:1-2) (행2:9)소개하고 있다. 1세기 말엽에 씌여진 베드로전서 서두에서 터키 지방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사를 전하는데 그 가운데 갑바도키아가 등장한다. 역사적 사실을 반영 한다면 이미 1세기 말엽에 이 지역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후에도 이슬람교도들의 침략으로 기독교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왔고 비잔틴 시대에는 성화파 신앙인들의 은둔처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갑바도키아 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든 도시 ‘젤베(Zelve)’ 위르굽(Urgup)’’아바노스(Avanos’)와 인근의 ‘파샤바흐체(Pasha Bahche)’골짜기가 있는데 마치 갓을 쓰고 있는 굴뚝 모양을 하고 있어 요정의 굴뚝들 이라 불리는 이곳에 수도 고행자들이 굴을 파고 은둔한 생활을 함으로서 ‘수도사 골짜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화산이 터진 후 갓 모양의 바위는 용암 부분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떨어져 나가고 원추형의 뾰족한 바위만 남아 있는 것을 여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갑바도키아는 미국의 그랜드캐넌을 닮은 험준한 골짜기의 도시로 순례객의 발걸음이 몰려오고 있는 곳으로 터키가 자랑하는 최고의 관광지역이다.
에배소(Ephesus)교회
에배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계:2:1)신약성서 4복음서가 기록된 성지 이스라엘을 십자가 군병들의 훈련소라고 한다면 에배소 교회는 사도바울을 중심으로 잘 훈련된 제자들이 실전에 투입되어 참혹한 영적 전쟁을 치렀던 선교의 현장 이라고 부르고 싶다.
바울은 이곳 에배소 지역을 맹수와 싸우는 것과 같았다고 비유하며(고전15;32)때마다 위험을 무릅쓴 생활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말한 만큼 에배소 교회는 문이 활짝 열렸다고 확신을 가지고 전도 지역을 삼았다.
에배소 교회는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규모가 제일 큰 넓은 지역이다. 이곳은 세계 속의 교차로라고 할 수 있는 카이스터(Cayster)강 주변을 중심으로 동, 서양을 연결하는 거대한 상업, 종교, 문화,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당시 아시아의 최대 도시요 로마시대 때에는 4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지역이었다.
여러 아시아 인접국에서 몰려온 상인들이 식료품, 금, 은, 보석, 도자기 및 온갖 생필품을 거래하는 아고라(Agora)시장은 심지어 노예 판매도 거래 하였다고 한다. 에배소는 AD133년 로마의 통치 속에 있다가 로마 제국 멸망이후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제국을 거쳐 현재 터키령으로 남아 있으며 오늘날 터키가 자랑하는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쿠사다스(Kusadas)항구 주변에 셀죽(Selusk)이라는 도시에 에배소가 위치하고 있다.
에배소 교회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AD 533-58)에 세워진 교회이며 그의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 교회를 개척 하였으며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제3의 기독교 중심지가 되어 복음이 이 세상 따 끝까지 퍼져 나가는 원조가 된 곳이었다.
바울이 에배소 지역에 머물고 있는 동안 고린도전서, 빌립보서, 그리고 옥중서신 빌레몬서를 기록 하였으며 에배소 갱내에는 시정 집회장, 체육관, 연극장, 도서관, 목욕탕, 창녀촌이 있었으며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라고 평판이 있었던 풍요와 다산의 여신인 아데미스 신전이 이곳에 있었다.
또한 바울의 유명한 설교와 전도 집회 장소로 이용했든 연극장은 무려 25,000명을 수용 할 수 있는 아시아 지역 중 초대형 연극장이었으며 에배소인들이 바울의 전도 집회를 저지하기 위하여 소리를 치며 난동을 부리며 모여 들었든(행19-23)곳으로 유명하다.
에배소의 겔수스 도서관(The Library of Celsus)두란노 서원에는 약 5,500여개의 두루마리 서적과 약 12000여권의 서적이 있었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바울은 이곳에서 27여 개월 간 머물면서 날마다 강론하며 성경공부를 시킨 곳이다.
(행:19:9) 두란노 서원의 바로 앞길에는 당시의 음탕하고 퇴폐업소였던 창녀촌이 있으며 벽돌과 대리석으로 도로위에 창녀촌의 위치를 알리는 여러 형태의 선정적인 그림이 표시되어 당시 음란 세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외도 갱내에는 도미티안(Domitian) 하드리안(Hadyian) 세라피스(Serapis) 신정의 건축양식이 너무나 독특하여 방문객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곳이다.
사도요한기념교회(The Church of John)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당시부터 복음 활동을 하였으며 AD37~42년 사이에 예루살렘에 핍박이 시작되면서 요한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 에배소 지방으로 내려 왔으며 이곳 갱 내에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생가가 있어 천주교 교인들의 순례지역 이기도하다.
사도요한은 에배소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어 도미티안(Domitian)황제의 독약과 기름통에 던져지는 심한 박해 속에서도 살아났으며 마침내는 밧모 섬의 극한 유배 생활 속에서 성경의 마지막 절 요한 계시록을 저술 하였으며 밧모 섬의 유배 생활을 끝내고 다시 에배소 지방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요한1.2.3서를 기록한 사랑의 사도이다. 6세기 때 건립되어 지진으로 허물어진 사도요한 기념 교회는 계속 복원 공사가 잘 진행되어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교회당 앞마당에는 그의 묘소가 안장되어 있으며 안쪽 세례소에는 당시 회개하고 개종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고 복음을 받아들여 기독교인들이 된 사람이 많았다고 전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