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2014-10-28 (화) 12:00:00
수령증에 도장을 꾹 눌러 찍고 건네받은 작은 상자가 잠깐 흔들,거렸는데요 잘 키워 봐라 품종이 괜찮은 거다 상자 밖으로 뛰어나온남자씨가 숙인 고개를 살풋 들었는데요 흐흐흐 남자라, 구미에 당기는 품종이군요 화끈한 식탁을 기대해도 되겠어요.
입안에 물을 머금고 나른한 세월 남자를 적셔주었는데요. 내 뜨거운 혀 끝에 줄기줄기 불끈불끈 근육을 세우며 주렁주렁 미끈미끈 약이 올랐는데요청양할매 이천 평 밭에다 남자를 키워 빻아 먹고 찧어 먹고 갈아먹고 여든 세월에도 청청한데요 아아악, 남자 하나를 베어 먹다 내한 세상 그만 눈물 콧물 범법이 되었는데요반쯤 뜯어 먹힌 남자가 식탁 끝에 넘어져 더 먹고 싶어? 은근히 쳐다보는데요,
/권애숙 (1955~) ‘택배 되어 온 남자’ 전문
활달한 시인의 상상력이 고추에서 남자로 식탁으로 청양할매의 드넓은 고추밭으로 분방하게 흘러넘친다. 맵고 뜨거운 남자와 반평생 살아오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화자의 모습도 재미있으려니와 더 재미있는 것은 식탁 끝에 앉은 남펴편의 모습이다. 여자 하나 먹여 살리느라 반쯤만 남은 남자가 ‘더 먹고 싶어?’ 하고 순진하게, 짖궂게 묻고 있다.
/임혜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