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수 ‘귀거래사’, 1650
제법 서늘한 가을 저녁, 환한 달이 떠오르고 뜰 앞에 핀 가을 국화의 기품을 바라보며 도연명의 시귀를 떠올린다.
“돌아가리로다. 전원이 황무한데 왜 아니 돌아가랴 … … 세 길은 거칠어져 가지마는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남아있다. 어린 것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니 술 단지에 술이 가득 차있다. 병과 잔 끌어당겨 손수 술 따르고 뜨락의 나뭇가지 보며 기쁜 얼굴 짖는다. … …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났으니 다시 나선들 무엇을 찾겠는가… ”도연명은 향촌에 머물며 은자로 지내며 가능한 인생의 낙을 누렸는데 희귀한 책을 구해다 읽으며 독서의 즐거움을 누렸고 시를 짓고 좋은 산수를 찾아 소풍을 즐기기도 하였다.
중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문인이며 은일사상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도연명과 그의 작품 ‘귀거래사’는 인물화의 매우 중요한 소재였다. 그의 일화들을 그림으로 묘사한 작품이 여럿 제작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그림이 진홍수의 ‘귀거래사<사진>’이다. 국화꽃을 그린 경우는 많으나 국화꽃 향기를 맡고 있는 사람의 그림은 드문데 바로 이 그림이 그렇다.
진홍수의 ‘귀거래사’는 명이 망하고 청의 관리가 되어 진홍수와 멀어졌으나 끊임없이 그의 그림을 원하였던 오랜 친구인 주량공에게 오랜 세월 거절하다가 그려준 그림이다. 명의 유민이 되어 한 때 중이 되기도 했던 진홍수가 친구를 나무라는 의도를 엿볼 수 있기도 한 작품이다.
둥글고 유연하며 가는 선이 절묘하기 그지없는데, 고전을 섭렵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지를 창조해낸 그는 300년 만에 나오는 걸출한 필묵의 화가라는 극찬을 받았다.
도연명이 술을 즐겨했듯이 그도 술을 좋아했는데 “노란 국화가 피기 시작하고 갈증을 적실 술이 있는데 그 이상 무엇을 원하리” 라는 글이 적혀있는 이 그림에서 시인은 국화 향기를 맡고 있다. 짙은 눈썹과 커다란 귀에 비해 손목은 여인처럼 가녀리고, 보아도 보아도 절묘한 선의 옷자락이 거문고에 드리워 있고, 신발과 술 단지와 풀잎이 보인다.
고결한 기개가 돋보여 시인과 화가 자신의 합일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진홍수 만년의 걸출한 작품이다.
그의 다른 그림을 들여다보면,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 선과 머리에 꽃을 단 남자 등 자유분방하고 유미적 상상력이 독창적인데 화조화에서도 독특한 선묘, 괴석의 묘사, 새의 이상한 표정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을 이루어 놓았다.
꽃을 든 인물의 이 그림이 좋아, 수년을 벽에 붙여 놓았더니 그림이 다 낡았다. 문인화를 좋아하고 거칠고 생생한 선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인물화의 가늘고 유연한 선은 그 드높은 경지가 놀랍기만 하다.
진홍수는 이미 4살에 그림을 그려 주위를 놀라게 하고 14살에 그림을 팔았고 일생 인물, 화조화를 그린 특출한 직업 화가였다. 산수화 우위를 주장해온 문인 화가들에게 기법이 뛰어난 직업화가로서의 자신의 입장에 그는 긍지를 가졌다.
문인 화가의 어느 정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법의 위선적 태도를 공공연히 비판한 당대의 현대적인 화가인 그에게서 한 선을 그리기 위해 더 오랜 수련을 요구하는 자기반성의 의미로 나는 그 그림을 그토록 오래 연모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국화꽃 향기를 맡으며 술과 거문고를 즐기는 옛 선인의 초연함을 닮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