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잃어버린 고리, 국민회관 유물

2014-09-24 (수) 12:00:00
크게 작게

▶ 김형재 사회부 차장대우

진화 과정에서 전후 기간을 잇는 부분이 빠지면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고 부른다.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다지만 잃어버린 고리를 찾지 못해 의견이 분분하다.

2003년 8월 미주 한인사회는 USC 인근 대한인국민회 기념관 복원공사 도중 잃어버린 고리를 찾았다. 숨겨진 다락방에서 서류 박스 29개 분량의 유물이 쏟아졌다. 유물에는 잊혀졌던 ‘우리네 이민 선조들의 이야기’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1903년 1월13일 이민선조 102명이 갤릭호를 탄 것을 시작으로 20세기 초반 약 7,000여명이 고단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상당수는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계약이 끝나자 샌프란시스코와 LA 등 미 본토로 이동했다. 조국이 일제에 강제병합 당하자 선조들은 막노동으로 번 급여를 떼어내 상해 임시정부 자금줄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교과서에 미주 한인 이민역사와 독립운동사는 거의 실리지 않았다. ‘미주 한인들이 독립운동도 나섰다더라’가 고작이다. 대한인국민회 유물은 한인 이민선조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는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독립운동 자금 입금대장, 1920년대 재미동포 인구등록, 이민초기 한글 교과서, 개인서신 등은 잊혀진 한인 이민역사의 뿌리기도 하다.

유물의 가치를 알아본 전문가들의 평가는 비슷하다. 한국 독립기념관 홍선표 박사는 “대부분 유물이 알려지지 않은 ‘원본’으로 한국 독립운동사·미주 한인 이민역사를 재평가할 귀중한 보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락방에서 발견된 유물은 11년만에 세상에 알려질 ‘기회’를 맞았다. 기념재단 이사회는 한인사회가 보존처리 및 시설, 전문 인력이 없다는 현실을 감안해 독립기념관에 ‘조건부 위탁관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기념재단은 훗날 한미박물관 등 적당한 보존시설이 마련되면 언제든 돌려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립운동사의 종합적인 조명을 위해 독립기념관에 우선 유물을 맡겨야 한다는 의견은 무시 못한다. 위탁 보존을 계기로 본국 국민들이 미주 한인들이 얼마나 가열차게 독립운동을 벌였는지 알게 하는 것도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유물의 한국 이전을 반대하는 이들에게선 ‘뿌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읽힌다. 선조들이 남겨준 기록을 보존할 역량이 없다는 부끄러움도 강하다. USC와 UCLA 동아시아도서관이 한인이민사가 곧 미국 역사라며 학술연구를 맡겨 달라는 모습은 인상 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물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 일이다. 유물의 한국 조건부 위탁이든 미 대학 위탁연구든 유물에 담긴 정보를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 일반인이나 학계에는 유물의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잃어버린 고리를 세상에 드러낸 뒤 유물 이전 찬반을 논해도 늦지 않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