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환자들 고민 들어주고 기도 영혼 치유 돕는 ‘한인 친구’

2014-09-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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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굿사마리탄병원 - 원목 로널드 데이빗 신부

환자들 고민 들어주고 기도 영혼 치유 돕는 ‘한인 친구’

로널드 데이빗 성공회 신부와 황규련 목사가 병원 채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과 고층빌딩이 몰려 있는 다운타운 사이 윌셔거리에는 굿사마리탄종합병원(Good Samaritan Hospital)이 자리잡고 있다. 몸이 아픈 한인들이 한밤중에라도 응급실로 달려갈 수 있는 ‘동네 병원’이다. 물론 한인 의사와 간호사도 적지 않게 근무한다. 성공회 교단 병원인 이곳의 원목(Chaplain)은 로널드 데이빗(Ronald David) 신부다. 성공회는 예배를 비롯한 예식은 가톨릭과 흡사하지만 신학적으로는 개신교와 매우 가깝다.

원목은 병원에 머물고 있는 환자들을 돌보며 건강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기 쉽다. 그들을 찾아가 대화하고 기도하며 애로 사항도 처리해 준다. 또 병원 직원들의 지친 심령을 도닥거리는 일도 원목의 몫이다.

“원목 훈련을 받으러 한국에서 온 함윤숙 신부가 있었어요. 젊은 여성 사제이죠. 말도 안 통하는 미국 병원에서 그녀를 만난 한인 할머니 환자가 반색을 하면서 무려 1시간 반이 넘도록 손을 놓지 않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러다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이 일본군에 종군위안부로 끌려갔었다고 고백했어요. 평생 가슴에 담고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던 비밀을 인생의 끝자락에서 털어놓으며 자유를 얻은 거지요.”


“같은 클래스의 한주희라는 신학생의 이야기도 원목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아직 나이도 어린데 내가 할 게 있겠나’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50대 한인 환자가 자꾸 ‘병실이 춥다’고 하소연을 했어요. 간호사는 의사 지시대로 얼음물을 먹으라고 하고요. 중간에서 통역을 하며 담요를 갖다 주고 찬물 대신 더운 물을 주도록 간호사에게 요청했죠.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빚어진 한바탕 소동이 간단하게 해결됐습니다.”

“하루는 원목 교육을 받던 프란시스 최 신부가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은 한인 할머니를 발견했어요. 병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 다가갔더니 울고 있더랍니다. 말을 걸어보니 바로 조금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병원에서 울 곳도, 하소연할 데도 없었던 거죠. 그때 할머니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하면서 함께 기도해 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데이빗 신부는 소아과 전문의 출신이다. 신생아 진료가 그의 전공이다. 의학박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워싱턴DC 보건행정기구의 최고책임자를 지내기도 했고 피츠버그에서 유아건강프로그램을 설립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부름을 깨닫고 신학교에 입학한 게 나이 오십을 훌쩍 넘어서였다. 버지니아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지난 2006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모 데브라 데이빗은 성공회 사립학교인 세인트제임스초등학교 교장이다. 이 학교 역시 한인타운 한복판 윌셔거리에 위치해 있다. 데이빗 신부는 자신이 배우는 한글 교재를 보여주기도 하고, 한인 목회자가 쓴 종군위안부 영어 책자를 소개하기도 했다.

“집도 한인타운서 멀지 않아요. 그야말로 이웃이죠. 저와 아내는 한인들에게 많이 배웁니다. 자기 문화와 언어를 소중하게 여기고 연장자를 섬기는 모습도 그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한층 깊게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굿사마리탄병원에는 한인 황규련 목사도 원목 사역을 하고 있다. 자원봉사로 섬기는 그의 헌신에 감동해 병원은 방 2개가 달린 사무실을 따로 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데이빗 신부는 훌륭한 멘토입니다. 매년 원목교육과정(CPE)에 한국 학생을 초청하는 등 지원도 아끼지 않습니다. 한국도 방문했고 한인의 ‘한’에 대한 이해도 깊어요. 주말 아침이면 부인과 함께 한인타운 커피숍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한인교계에서는 원목 사역자가 드물다. 한인 인구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황 목사도 50대에 신학교에 입문했고 CPE자격증을 취득한 뒤 줄곧 원목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모든 목회가 그렇지만 특히 원목은 말을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한인 환자들은 좀처럼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아요. 누구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죠. 마음이 풀리면 몸의 병도 많이 나아지는 걸 자주 봅니다. 병원에서는 원목을 적극 활용하세요.”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walkingwith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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