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장 난 저울

2014-08-27 (수)
크게 작게

▶ 살아 가면서 강신용

광화문 백만 인파가 태고의 적막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백만의 눈길이 교황님께로 향한다. 조그마한 소울 자동차에 올라탄 교황님은 길목마다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눈빛과 손짓으로 은총을 두루두루 나누어주신다. 백만의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한 곳에 모였다. 교황 한 사람의 영혼이 한국의 수백만 영혼에게 기쁨과 감사의 축복을 조용히 내려주신다.

한국 천주교인은 오백만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도 교황님만큼이나 위대한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다. 추기경으로 계시던 사십년 동안 한국에는 약 사백만명의 천주교인이 늘었다고 한다.

겸손과 사랑의 밀알을 뿌리시던 추기경님의 밀밭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보인다. 낮은 곳의 아픔을 아우르는 그의 따뜻한 손길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오천만 국민 모두가 그의 가슴에 피어 있는 노란 리번 꽃을 본다.


교황의 소박함이 한국의 허세를 눌렀다. 교황이 타는 공식 자동차 이름은 한국에서 만든 소울이다. 소울을 번역하면 영혼이란 뜻이다. 숱하게 많은 비싸고 좋은 차도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소울을 선택했을까? 아마도 영혼이란 차를 타고 한국의 영혼을 보살피려 오셨기 때문일지 모른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세계에서도 유명하다. 외제차 허세, 명품 허세, 심지어 자식 허세까지 부리는 한국인이다. 그의 삶을 통해 소박한 영혼도 위대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말없이 보여준다.

영혼을 저울에 올리면 얼마나 나갈까. 교황님께서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종교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인간의 욕망과 번뇌를 태고의 바다 속에 깊이깊이 묻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한척을 내려가는데 수십년이 걸렸다고 고백하셨다.

아름다운 영혼이 허세에 짓밟히고 상처받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유령들이 안방에서 배회하고 말속에 꾸물댄다. 수백만의 영혼을 저울에 달면 백만배나 더 나갈지 모르겠다.

성악가 파바로티는 체중계를 몹시 싫어했다. 무대의 동료들은 신이 내린 그의 목소리에 으르렁거리며 질투하고 쑥덕거렸다. 우람한 몸집, 카리스마 눈빛 그리고 얼굴을 가득 덮은 검은 수염의 파바로티는 몸무게가 사백파운드까지 나갔다고 한다. 수백명의 환호소리를 뒤로 하며 무대에서 내려오면 별의별 진수성찬에 폭 빠졌다고 한다. 먹은 만큼 찌는 살을 어쩌란 말이냐. 그가 머무르는 호텔에는 특별한 체중계가 없었다고 한다.

세상의 인심이 널뛰기를 한다. 높이 뛰면 뛸수록 멋져 보이고 힘차게 구르는 널뛰기는 불균형의 기술이다. 저울에 달아보면 높고 힘은 없어도 그렇고 그런 소박한 백만의 범인들이 모였다. 오천만의 눈으로 코로 귀로 낮은 곳의 몸짓을 보았고 향내를 맡고 은혜의 소리를 들었다. 치매가 심하다. 벌써 잊어버렸다. 무게로 달 수 없는 탐욕만큼이나 불안하고 초조한 메아리가 광화문에 가득 차오르고 있다.

샤워를 하고 체중계에 올라선다. 오파운드가 빠졌다. 착각은 자유지만 기분이 좋다.

매일 같은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고장 난 저울을 보고는 그냥 웃고 말았다. 고장 난 육신의 저울은 보이지도 않는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