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커다란 박스 하나가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소설책, 철학책 등 내가 읽을 책들과 몇 가지 한국의 과자와 사진 그리고 작은 소품들이었다.
한국에 계신 엄마도 좀처럼 보내지 않는 무거운 박스를 내게 보내온 사람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다가 다시 인터넷의 한 통로로 연결된 친구였다. 이십년의 세월을 거슬러 친구와 다시 소통할 수 있게 한 인터넷에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편지지를 고르고, 공부하는 틈틈이 빼곡히 써서 문방구에 가서 우표를 사서, 우체통을 찾아 부치던 편지. 요즘 아이들은 그런 수고와 노력으로 보내어지는 나의 마음과 손에 받아들게 되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그냥 자연스럽게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오늘의 기분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친구의 기분을 달래주고, 한 줄의 코멘트를 남기는 것으로 끝낼 것이다.
물론 세상이 달라졌으니 이런 식의 빠르고 즉각적이고 간단한 소통에 익숙해지고 편리함을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의 숙성 과정도 없이 바로 전달되는 이 소통의 홍수는 잘못하면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
600여 명의 페이스북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비엔나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소통의 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카운트를 지우는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한다. 정보보호 이슈는 기본이고 친구로 추가하라는 압박도 페이스북을 떠나는 이유라고 한다.
2013년 초 미국에서 900만명, 영국에서 200만명이 페이스북을 떠났다. 소통하기 위해 만났다가 그 넘치는 관심과 개방성에 아예 소통을 끊어버리자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보통 옆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궁금해 한다고 하는 데 이는 어쩌면 이런 개방된 소통의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의 발로로 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 아이가 내 전화기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이 모두(?) 한다고 하여 시작하게 했는데, 들여다보면 서로 누가 더 많이 팔로워(follower)가 있나 경쟁을 하고 있다.
몇 주 안에 몇 명이 넘었다고 자랑하는 아이, 몇 명 넘기는 게 목표라고 내세우는 아이.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추가하고 따라가고 더 눈에 띄기 위해 경계를 넘는 사진과 멘트를 올리고...
그런데 이제 아이의 어카운트는 지워야 할 듯하다. 아직 세상이 뭔지 모르는 나이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위해 사진을 올리고 누군가의 사진을 복사해서 또 올리는 것은 소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통이라기보다는 그냥 감정의 분출일 뿐이다.
기다리는 시간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 소통은 나와 상대방의 생각이 만나 오랜 시간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길이다. 관계를 성숙시키는 소통이 아닌 관계를 깨고, 두렵게 만드는 즉각적인 소통의 홍수가 점점 무서워진다.
한국에서 온 박스 속에 들어있는 책들은 오랜 시간 나를 보고 나와 소통한 친구만이 해줄 수 있는 귀한 ‘메시지’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의 답장은 그것을 모두 읽은 후에나 할 수 있는, 또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친구도 분명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