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현의 자전거와 샘 윌톤의 픽업트럭

2014-08-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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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가면서

▶ 강신용

갈등의 얼음벽이 녹아 내렸다. 여자가 가슴에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했는데, 사내대장부가 두 바퀴에 두 발을 싣고 달리니 한 여름이 시원하다. 남해 바람이 세기는 센가 보다.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순천이라는 도시 이름과 아름다운 생태공원으로 미국 동포들의 귀에도 익숙하다. 7월 순천 보궐선거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가 싶더니 남해의 순풍이 우리들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식혀준다. 선거판은 이판저판 빨래판이라지만 깨끗하게 이긴 이정현 후보의 선거운동 스토리는 상쾌하기 그지없다.

아직도 한국 선거는 낭만이 있다. 밀짚모자에 중고 자전거를 타고 확성기 하나로 선거운동을 한다.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숨길 것 하나 없이 다 보여준다. 기사 식당 단골들과 5달러짜리 해장국으로 한 끼를 때운다. 논길 밭길 따라 손들어 농부에게 인사하고 시장통 아줌마 손에 죽자 사자 매달린다 한 번만 찍어 달라고. 입장료도 없고 사진 찍는 것도 아니지만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선량이 되겠다고 발품을 팔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하게 손을 잡는다. 서민이 큰소리치는 멋진 선거판이 아직도 그 곳에는 있다.

한 표가 모여서 선량이 되듯 1달러가 모여서 100달러가 된다. 백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언제 어떻게든 시작을 해야 어딘가 도달하게 된다. CPA 사무실을 시작할 때 제일 많이 받은 액자가 욥기 8장7절 말씀이다. 액자 내용은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이다. 이 말씀대로 행한 사업가는 아마 ‘월마트’를 창업한 ‘샘 윌톤’ 회장임에 틀림없다. 백년 전에 태어나 단 돈 2만5,000달러로 40년만에 650억달러의 부자가 되었으니 욥기는 2,000년 전에 벌써 샘 윌톤을 예언했음에 틀림없다.


미약한 시작은 검소한 생활에서 출발한다. 성경에 쓰인 ‘humble’은 ‘겸손한, 검소한 또는 보잘 것 없는’이란 뜻이다. 샘 윌톤은 살아생전에 야구모자를 즐겨 쓰고 픽업트럭을 타고 다닌 세계 제일의 부자였다. 샘 윌톤에게 1달러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고객의 돈을 절약하는 정신이 세계에서 가장 큰 ‘월마트’가 된 그의 경영철학이었다. 세계 30여나라에 1만1,000개의 매장을 가진 어마 어마한 기업도 겸손한 자세로 일궈낸 것이다.

자전거 한 대로 6만표를 모았다. 한 표가 모여 200가지의 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 되었다. 자전거 짐칸에 특권을 30개만 쌓아도 두 바퀴는 부서져 버릴 것이다. 밀짚모자가 금관으로 뒤바뀌는 날, 확성기가 불통되는 날이 오면 선량은 불량품으로 2년 후에 벌거숭이로 보일 거다. 세상에는 못난 사람이 없다. 그저 한 번쯤 속을 뿐이다. 그렇다고 잘난 사람도 많지는 않다. 다만 저 잘난 맛에 사는 인생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콧대 높고 성깔만 있으면 한 식구 두 표도 어림없다. 픽업트럭은 고사하고 자전거 타기도 힘든 팔자타령만 해야 한다. 태산도 티끌이 흩어지면 사라질 수 있다.

눈높이는 낮추고 보은에 감사한다. 햄버거를 좋아하는 워런 버핏, 픽업트럭을 타는 샘 윌튼 그리고 자전거로 선거하는 이정현, 그들은 보통사람의 마음속에 편안한 이웃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몸을 낮추고 뜻은 세운 선량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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