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녁 나들이가 반갑지 않은 이유

2014-06-21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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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윤 / USC 동아시아 도서관 한국학 사서

“빠빰빠바바바… On this Sunday night… NBC Nightly News with Brian Williams…”“300, 297, 294, 291, 288, 285 …”

요즘 내 침대 머리맡에서 나는 소리들로, 한 소리는 내가 듣는 소리이고, 한 소리는 내가 속으로 내는 소리이다. 처음 소리는 핸드폰이나 태블릿에 다운로드 받은 NBC 밤 뉴스의 시작부분으로, 지난겨울부터 귀의 이명 현상이 심해지면서 등장한 내 수면 도우미다.

‘어느새 좋아졌나? 사라졌나?’ 잊고 있다가 문득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 보이는 정체불명의 소리. 특히 잠자리에 드는 시간처럼 주위가 조용해지면 자기 세상 만난 양 묘한 기계음으로 내 머리를 꽈악 채워버린다.


이렇게 되면 잠은 완전 물 건너가게 된다. 숙면은 고사하고 3,4부 쪽잠이라도 청해보려면 불청객의 이 소리를 물리치기 위해 내 관심을 돌릴 다른 소리가 있어야 했다. 처음 시도는 당연히 명상 음악이었다. 하지만 명상 음악은 너무 조용해서인지 귓속 소리에 금방 밀려났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VOD는 환한 스크린이 신경에 거슬렸다. 다시 오디오 북, 팟캐스트 등으로 전전 하다가, 이 팟캐스트 뉴스 프로그램이 요즘 내 잠자리 동무가 된 것이다.

두 번째 소리는 2년 전쯤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찾아온 불면증을 수면제 도움 없이 해결해 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 얻은 팁이다. 다른 생각이 머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조금은 머리를 써서 뭔가에 집중하게는 하는 한편 금방 심심해져 잠이 들 수 있는 방법으로, 300에서 3씩을 빼가며 천천히 세어보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양이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더 효과적인 듯 했다. 언제 또 다른 수면 도우미가 필요할지 모르나 지금으로서는 이 수면 해법들을 발견한 사실에 아주 뿌듯해하고 있다.

이제 겨우 노년기로 다가가는 정도의 나이임에도 그 동안 당연한 듯 누려왔던 내 몸의 기능들이 하루하루 약해지고 사라져가는 과정에 당황스럽다. 언젠가부터 그나마 남아있는 기능들이라도 잘 다독여 내 하루가 그런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선 숙면이 필수가 되어버렸고 하루를 계획하는 중심점이 더 이상 ‘기상’이 아닌 ‘취침’으로 바뀌었다.

숙면을 위해 저녁을 서둘러 일찍 가볍게 먹고 잠자리도 몇 시간 전부터 심심하고 컴컴하게 준비를 한다. 그 재미나던 저녁 나들이가 더 이상 반갑지 않게 되어버린 것은 당연지사. ‘설마 하루쯤은’ 하고 밤늦게 들어와 흥분상태로 잠자리에 들면 여지없이 말똥말똥, 양도 숫자도 약발이 잘 듣질 않으니 말이다. 잠 하나에 생활이 이 정도로 영향을 받고 보니 세월과 함께 편안하고 담담하게 사시는 노인들이 다시 보이고 너무나 존경스럽다.

문득, 몇 년 전 박경리 작가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유고시집 제목을 대하는 순간 머리가 띵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한 자연이치에 새삼 왜 한방 맞은 것 같았을까?’ 돌이켜보면 죽음에 대한 이 당연한 이치를 이해하는 머리는 한쪽에서 존재감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지 싶다.

내가 그 동안 매 순간 누려온 것들에 대한 당연함이 기세등등하게 대부분의 내 머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강한 자극이 아니면 이 자연이치는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리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원리와 이치를 제대로 공부하고 깨달으며 살겠노라 열심히 말을 했지만 사실은 이에 거스르는 일들에만 열중하며 살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더 이상 힘에 부쳐 제대로 관리하기 힘든 일들, 물건들, 관계들이 주위에 즐비하면서도 이들을 털어 버리기가 아쉽고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이 당연함이 서늘하고 당혹스러운 것일 게다. 귀 문제와 수면문제는 몸을 돌봐 달라 아우성대는 여러 증세 중에서 좀 눈에 띄는 것들일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유난을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보니 내 머리 한쪽에서 잠잠하던 이 우주 만물의 이치가 자꾸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빨리 빨리’ ‘많이 많이’ ‘열심히 열심히’는 이제 그만 잊어버리고 갈수록 천천히 조금씩 살살 털어가며 살아봐야겠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평온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이 느린 삶 또한 만끽할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올 수 있도록 말이다. 그날이 바로 내일이면 좋겠고 그 후론 매일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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