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라우마

2014-05-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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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가면서

▶ 강 신 용

인터넷과 SNS 혁명의 물결로 세상이 정신없이 돌고 돈다. 지구촌 소식이 옆집 소문보다 빠르다. 인터넷이 눈앞에 펄쳐지면 요술 방망이처럼 정신이 머엉해진다.

사색이나 산책은 박물관의 장식품같다. 도시 생활이 몸에 밴 사람들은 한시가 바쁘게 살고 지낸다. 뉴욕에서 사업을 하다가 남가주로 이사온 분들은 LA가 너무 느리다고 불평한다. 천천히 걷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느리다고 불평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말처럼 사색과 산책이 더욱 절실한 시절이다.

지구의 둘레는 약 2만5,000마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 시간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희로애락의 소식을 보고, 듣고, 즐기고,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겠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란다.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면 아이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마련이다. 눈치코치로 얼버무리는 수도 있지만 3문3금에 해당되는 경우이다. 한국에서는 묻지 말아야 하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떤 학교에 합격했는지, 과년한 자녀의 혼사와 그리고 부부 사이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오늘은 착한 아이가 내일은 어쩔까 모르는 험한 시대에 모두가 노출되어 있으니 말이다.

법 중에 웃기는 법이 ‘떼법’이란다. 아프리카 밀림지대는 말 그대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를 보게 된다. 하이에나떼는 특히 잔인하고 무서운 패거리다. 혼자는 외롭고 힘을 쓸 수도 없다. 그러니 떼지어 몰려다니고 떼지어 공격하고 죽이고 더 먹으려 또 싸운다.

만물의 영장도 그들의 세상과 원초적 본능을 가지고 사는 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 몰려가 데모하고 농성하고 자신의 주장을 소리소리 지르며 해결하라고 떼쓴다. 이것이 웃지 못할 떼법의 기본이다.

외로운 사자도 하이에나의 도시락이 될 수 있다. 떼거리에서 빠져 나온다는 것은 무서운 현실이다. 세상에는 순한 양과 착한 사슴이 살기에는 너무나 무섭다. 돼지 마을에 늑대가 오면 늑대한테 동료의 생명을 상납해야 되는 것이 돼지촌의 운명이다. 양은 양대로 돼지는 돼지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잠시도 경계를 늦추거나 방심하면 주검이 옆에서 기다린다. 줄에서 낙오하면 사자도 별 볼일 없는 판에 늑대가 우글대는 숲속에서 길 잃은 양은 공포에 휩싸인다.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조국의 아픔에 충격도 크다. 트라우마라가 이제는 일상 용어로 한국말 속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말뜻이 섬뜩하니 그냥 트라우마라고 하나 보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부모들도 모두 쓰리고 아픈 상처에 기진 맥진 힘이 빠져 있다. 주변을 맴돌던 하이에나 떼에 모두 물어 뜯긴 기분이다.

돌고 도는 지구촌 돈소리에 머리가 돈다. 사슴처럼 조심스레 살고 싶다. 한발 물러나 그루터기에 걸쳐앉아 먼곳을 바라본다.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 일도 없는 양 그냥 돌아간다. 아픔을 간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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