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이번호의 제목을 영어로 쓴 이유가 있다. 우리말로 청교도, 순례자, 퀘이커교도, 추수감사절 등의 번역된 단어들이 있으나 좋은 번역들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 단어들은 외국어로 번역되는 순간 영어 원래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곧 뉴잉글랜드에서 시작한 첫 13개 주의 생성역사를 읽게 되는데 위의 단어들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개념들을 알아야 역사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서 궤도를 잠간 벗어나 ‘아마추어학파’적 해설을 아래에 해보고자 한다.
원래 역사는 전통, 종교,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등등의 복합적인 요소들이 서로 연관되어 이뤄지는 것인 까닭에 위의 각 분야에 거의 전문적인 수준의 학식이 있어야 올바른 역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아마추어 수준”의 글을 써 보고자 해도 머리를 돌리는 쪽마다 학식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치곤 한다.
이 글의 제목들이 된 단어들과 George Washington 등은 미국 사람들이 거의 성스럽게 여기는 단어들로써 이미 미국인 일반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에 대해서 서투르게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은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은 위험성이 있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단군 출생’설화에 대해서 어떠한 고고학적, 과학적 반론이라도 감성적으로 쉽게 받아드리지 않을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몰랐다면 더 나을 뻔 했다” 는 얘기처럼 필자도 훗날에 “그 글은 그때 안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후회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이글을 쓴다. 한입에 삼킬 수가 없는 큰 고깃덩어리를 덥석 문 호랑이 새끼도 아마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Puritans:
“썅! 너거들만 독야청청 도덕군자라 말이가! 그라머 인자부터 너거덜을 Puritans 라꼬 불라주꾸마!”
군웅할거 하던 봉건영주들을 견제하고 Tudor 왕조를 시작한 헨리 7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헨리 8세는 재위 중 말썽도 많았으나 영국의 국력을 강화하고 왕의 권위를 확고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여러 가지의 치적에는 장가를 여섯 번이나 들고 왕후 두 명을 사형시켰으며 영국을 천주교에서 떼어내서 Anglican church 를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만든 후 영국 왕이 영국교황이 되도록 한 것들도 포함된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헨리 8세 때문에 시작되었다.
헨리 8세는 첫 번째 왕후 Catherine of Aragon의 시종귀인인 Anne Boleyn에 매료되어 로마교황에게 Catherine과의 결혼을 무효화 시켜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교황이 허용하지 않자 Anne 과 그냥 결혼을 해 버렸다. Anne은 영국 최고 명문가의 딸이었는데 결혼 전에 염문도 있었던 여자로써 후일 엘리자베스 1세가 될 딸 하나를 낳고 낙태를 세 번 한 후에 ‘반역죄’ 로 결혼 3년 후에 사형을 당했다.
로마교황이 헨리 8세를 천주교에서 파문해 버리자 헨리 8세는 영국을 천주교에서 떼어내고 명목상 개신교인 영국국교를 시작했는데 시작 때부터 교회 내에 말썽이 많았던 듯하다. 명목상 개신교인데도 불구하고 영국국교는 사제의 역할이 천주교 신부와 비슷하고 천주교처럼 기도책을 쓰는 등 예배절차도 천주교와 비슷했고 교회의 장식도 천주교 성당과 비슷했었다 한다. 교회의 형식주의를 청순화(purify)하자고 나선목회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들을 비꼬아서 주류파들이 아마 이 글의 서두에 쓴 것 같은 얘기를 하면서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1세 때에도 Puritans들은 계속 박해를 받았고 그 후 제임스 1세 때에는 영국국교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형무소에 보내고 더러는 사형까지 하자 교회 밖으로 뛰쳐나온 Separatists 들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종교의 자유를 찾아 화란으로 대거 이주하였고 그중 일부가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Pilgrims:
‘pilgrim’ 이라고 쓰면 단순히 ‘순례자, 방문자’ 라는 의미이다. 꼭 종교적인 의미로만 쓰였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pilgrim은 평생에 한번은 해야 된다는 메카를 방문하는 이슬람교인일수도 있고 역사유적지 순례자일수도 있고 예술의 전당이나 스포츠 전당 등을 방문하고 다니는 사람일수도 있다. 그러나 Pilgrims 라고 P자를 대문자로 쓰고 끝에 s자를 붙이면 특정한 의미가 된다.
Pilgrim Fathers 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는 Pilgrims 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영국 서남쪽의 플리머스를 떠나서 7주일만인 1620년12월에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에 정착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Pilgrims와 Puritans는 동의어가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02명의 Pilgrims 중에는 35명의 Puritans 들과 Separatists 들이 있었다.
Pilgrims들은 미국 타 지역에 정착한 사람들보다 수준들이 높았던듯하며 이주의 제일 목표가 물질적인 부의 추구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이었다라고 생각되며 그런 까닭에 타 지역 정착민들 보다는 한 차원이 높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Pilgrims 라고 처음 불린 것은 매사추세츠의 주지사를 31년간이나 지낸 William Bradford가 그의 저서 ‘Of Plymouth Plantation’(1630-1651) 에서 ‘strangers and pilgrims’ 라는 구절을 씀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 같다.
신약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기술된 것과 같다고 하나 이 성경구절을 읽어본 필자는 연관성을 얼른 깨달을 수가 없었다. Pilgrims 들은 자신들의 삶이 높은 언덕위에 Liberty를 위해서 지어진 아름다운 집처럼 전 세계에 보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하는데 그 후의 미국역사를 보면 그 꿈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Pilgrims를 얘기할 때에는 존경과 애정을 담아서 얘기한다. 기독교인들이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 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미국사람들은 Pilgrims들을 건국의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모신다.
필자가 로드아일랜드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던 같은 교회의 노부부가 있었는데 남자노인이 Pilgrims의 후손인 것을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미국 사람 중 그분처럼 상세한 가계도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처음 보았었다.
■Quaker:
영국국교에 Puritans 들 보다 더욱 강경하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퀘어커(Quaker) 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Friends’ 라고 불렀으며 ‘you’ 대신에 ‘thou’라는 단어를 썼고 극단적인 평화주의자들로써 공격을 받아도 폭력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집총거부로 군대대신에 형무소를 택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미국에서는 노예제도를 반대해 도주하는 노예들을 숨겨주기도 하였으며 교인들의 숫자에 비해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컸었다. 펜실베니아 주를 퀘어커 교도가 개발했고 로드아일랜드 주에서는 여러 명의 주지사가 퀘이커 교도들이었으며 리차드 닉스 대통령이 퀘어커 교도였다.
사람이 감기 걸렸을 때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내는 소리를 보고 ‘quake’한다고 말하는데 영국국교 주류파들이 퀘어커 교도들을 비꼬아서 ‘quake‘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퀘이커라고 부른 것이 그 교파의 명칭이 되어 버렸다 한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별명이 본명이 되어버린 기독교파가 ‘Shaker’ 교도들이다. 뉴욕 주에서 시작된 이 교파는 한때 미국 여러 주와 캐나다에까지 교세가 뻗었었으나 요즘은 거의 없어졌다. 이들은 예배 중에 high pitch의 찬송가를 부르면서 열광적으로 몸을 떨었기 때문에 밖에서 들여다본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독신주의자들로써 남녀장로들의 인도아래 각각 다른 건물에서 살았으며 고아들을 데려다 길렀으나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버려 존속이 되지 못하였다. 이들은 모든 생업을 충실히 하는 것이 하느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라고 해서 신용이 높은 제품들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만든 가구는 미국식 고급 골동품이며 Shaker peg 이라고 불리는 간단한 벽 옷걸이, 우물 펌프 등도 이들이 발명하였고 지금도 Shaker seeds 는 농민들이 가장 신용하는 씨앗이라고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