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페인, 1521년 아즈텍 왕국 정복

2014-02-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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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 김의 길따라 말따라

▶ John Kim의 Spanish Class (323)346-7749

1810년대의 중남미는 독립을 위한 전쟁으로 몹시도 어수선한 분위기였는데 우리는 여기서 잠깐 중남미 최초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고 가기로 하자.

최초로 1492년에 컬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래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컬럼버스가 만들어놓은 식민지인 산토도밍고(지금의 쿠바와 푸에르토 섬)를 기지로 중남미 대륙을 침략하였다. 1519년, 탐험가 에르낭 코르테스의 지휘로 병사 508명과 말 16필을 11척의 배에 나누어 태우고 유카탄 반도에 상륙하였는데 에르낭 코르테스는 이곳에 Veracruz(베라쿠르즈; 십자가를 보리라 라는 뜻)라는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유카탄 반도의 마야족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여러 부족들을 점령해 나갔다. 말이나 대포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인디오들은 공포 속에서 코르테스에게 항복하였으며 코르테스는 원주민을 통해 황금으로 가득 찬 아스텍 왕국(지금의 멕시코시티)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였으며 400여명의 원정대(15마리의 말과 7대의 대포)를 이끌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521년, 아즈텍 왕국을 정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스페인 제국은 부왕제를 도입하여 아즈텍 왕국에 Nueva Espa?a(뉴스페인)란 이름으로 스페인 산하 왕국을 건설하였다. Virreinato de Nueva Espa?a(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란 당시 북아메리카와 아시아, 태평양의 에스파냐 영토 행정단위였는데 이곳에서 부왕은 오늘날, 미합중국 남서부와 루이지애나 해안과 플로리다, 멕시코, 중앙아메리카(파나마 제외), 카리브해, 필리핀을 관장했다고 한다.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은 1535년부터 1821년까지 존속하였다.


한편, 1533년 탐험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파나마를 지나 해안을 따라 잉카제국에 도착하였다.

당시의 잉카제국은 아타후알라와 라스카르라는 이복형제가 왕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런 혼란을 이용하여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당시 통치권자인 아타후알라에게 회담을 요청하고 카하마르카 시내광장으로 향했다. 완전 무장한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한 피사로의 모습을 본 아타후알라의 눈에는 네 개의 발을 가진 커다란 신의 모습으로 비쳐졌다고 한다.

광장에 도착한 후, 신부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과 스페인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자 모욕적인 발언이라고 아타후알라가 성서를 바닥에 던지는 순간 이 때를 놓칠 새라 피사로 병사들은 아타후알라를 체포하고 잉카족을 학살하기 시작하여 결국 잉카제국은 1533년 멸망하고 말았다. 스페인 국왕은 이 지역을 Nueva Granada(새로운 그라나다)라고 이름 짓고 두 번째 부왕제국을 건설하였는데 그 후, Virreinato de Nueva Granada(뉴그라나다의 부왕령)은 오늘날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파나마, 에콰도르 지역까지 관장하였다.

그리고 스페인 탐험가들은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지금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Virreinato de Rio de la plata(라플라타 강 부왕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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