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은 ‘인민의 태양’ 거대한 초상 만들어 숭배
▶ 라진과 선봉지역 통합 라선특별시로 바뀌어
태양상 앞에 선 일행들, 왼쪽으로 부터, 뉴저지 조야고보 신부, 동명유치원 직원 2명, 대전교구 은퇴사제 조병기 신부, 미국에서 간 동포 3명.
경제활성화 위해 외국인 왕래 잦아
김일성 부자 초상 ‘태양상’ 있는 태양산
필수 관광코스 정해져...조화사서 헌화
청진 들어갈때는 여권 주고 다시 입국수속
■동명산 호텔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동명산 호텔 3호동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깊었다. 일행은 여권을 안내원에게 주고 호텔 로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로비에 장식된 꽃들은 모두 조화였는데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호텔 안내원에 의하면, 2010년 1월부터 라진과 선봉지역이 통합되어 인구 20만 명의 라선 특별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평양은 오히려 직할시로 불리었고 특별시는 라선과 남포라 하였다.
라선 특별시에는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많은 외국인이 머물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중국인과 러시아인을 만났는데 이들은 발전기기, 항만공사 등을 위하여 라선시에 체류 중이라고 했다. 호텔 프론트 데스크를 마주보는 방향에 약 1000Sq Ft정도의 매점이 있었는데, 진열대 선반의 50%는 비어 있었다. 그나마도 진열된 상품의 70%가 담배와 술로서 술과 담배를 못하는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수속이 끝나자 40대의 날씬한 여성 안내원이 나에게 다가와 가방을 달라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호텔의 가장 고층인 4층이 내 방인데 계단을 이용하여 자신이 4층까지 운반하겠단다. 결혼 후 지금까지 아내를 위하여 운전하고, 짐을 들고 다니던 나로서는 너무나 당황스런 일이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호텔의 등급은 그 곳에서는 최고라 하지만 국제 기준으로 본다면 별 두개 정도로 생각되었다.
침실에는 침대 3개가 있었으며, 리빙룸 공간은 널찍하였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은 아름다웠다. 호텔을 살펴보기 위해 다시 방에서 나와 지하로 가니 국제 규격의 수영장과, 샤워시설, 목욕탕, 안마실이 있었다. 안마는 전신 마사지 한 시간에 100위엔 ($17)이었다. 안마원은 한사람이었는데 나를 포함하여 기다리는 사람이 세 명이어서 안마를 포기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북한에 들어오며 두 시간 동안의 통관 절차 때 받았던 긴장감도 풀리고, 북쪽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며 잠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시간을 보기위해 침대 옆의 램프를 켰는데 작동이 안 된다. 실수로 메인 스위치를 껐나 보다 생각하며 어둠속을 더듬거리며 화장실을 겨우 찾아갔다. 아침이 되어 전원 스위치 위치를 확인해보니 문제가 없다. 북한 안내원 이야기가 전력을 아끼기 위하여 전체적으로 전원 공급을 서너 시간 중단한다고 했다.
■잊을 수 없는 김치 맛
식사는 여행사에서 직영하는 식당을 이용하였다. 커피를 제외한 모든 음식에 일행은 대 만족하였다. 특히 김치는 천하일품이었다. 바다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공기 속에 자란 배추로 담은 김치는 원래 유명하단다. 우리가 평소 먹어왔던 김치보다 양념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시원하고 달콤한 배추 맛 자체로 일행은 김치에 푹 빠졌다. 매 식사 때마다 흰밥, 국, 생선튀김, 야채 샐러드가 기본으로 나왔으며 빵, 맥주, 커피가 항상 부수적으로 식탁에 올라 있었다.
나는 식사 전에 혹시 잡곡밥이 있냐고 물어보았다가 준비가 안되었다는 대답과 동시에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고 함께 간 일행에게 눈총(?)을 받기도 했다. 준비된 커피는 다른 음식에 비해 옥에 티였다. 연변에서 온 안내원은 이 같은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한국산 가루커피 봉투를 준비해 와서 우리 일행의 커피를 바꾸어주는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우리가 이용했던 모든 식당은 노래방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 식당 종업원은 노래방의 도우미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노래방 기계 또한 역시 중국 제품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대한민국의 그 좋은 노래방 기계들로 다 바꾸어 놓을 수는 없을까.
■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
식사 후 안내원이 버스에서 유창한 영어로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로마에서는 로마인이 하는 대로…)”라며 “우리나라에 왔으니 이곳 인민이 하는 대로 여행 일정을 지킵시다.”라며 태양산을 가자고 한다. 나는 그저 이곳 라진에 있는 동네 산이겠지 하며 별 생각 없이 차에 올랐다. 안내원은 태양산에는 태양상이 있기에 태양산이라고 한다며 김일성이 인민의 태양이라고 한다.
태양산에 가기 전에는 꽃집에 들려서 꽃을 사서 헌화를 해야 한다며 꽃집에 차를 세웠다. 그 꽃집은 생화가 하나도 없었고, 모두 플라스틱과 실크로 만들어진 조화였다. 약 50위엔(미화 8불)을 주고 조화를 산 일행은 태양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의 규율이 있었다, 태양상은 100% 나오게 찍어야 하고 일부가 잘려지면 안 된다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조그마한 타일로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어져 있었다.
모자이크의 예술적인 수준은 있어 보였으나 김일성 부자의 얼굴이 너무 커서 흔히 이야기하는 우상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헌화된 꽃은 저녁에 다시 회수되어서 포장지만 바뀌어서 다시 판매된다는 것이다. 태양상인지, 태양산인지가 혼돈이 된 일행이 안내원에게 손가락으로 김일성 부자의 상을 가리키며 질문을 하자 안내원은 갑자기 목소리의 톤을 낮추더니, 부드러우나 아주 단호하며 정중하게 “여기서는 손가락 하나로 태양상을 가리키진 않습니다. 꼭 필요하면 다섯 손가락을 모두 사용합니다.
여러분도 손가락질을 당하면 기분이 나쁘시겠죠”라며 말한다. 나는 속으로 성지순례 때 예수님의 십자가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적도 있는데 태양상은 정말 무섭구나“하며 불편하였으나 내색은 못한 체 “아 그렇겠군요” 하며 천연스럽게 대답하였다.
■청진시 통관 검문소
라선시 중심가에서 버스로 약 30분 남쪽으로 가니 청진으로 들어가는 통관 검문소가 있었다. 같은 나라에서 여권을 주고 다시 입국 수속을 하다니 무척 생소하였다. 무슨 문제인지 모르지만 약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선 인민공화국 청진에 입국했다는 도장이 찍힌 여권을 다시 받았고, 청진 여행사 직원이라며 또 한사람의 안내원이 추가 되었다. 이제 북측 안내원만 세 사람이 되었다.
첫째 안내원은 통관을 도와준 동포청 직원, 둘째는 라선시 안내원, 셋째는 청진지구 여행사 직원 그리고 운전기사까지 합하니 모두 4명의 북한 주민이 소형 버스에 동승하였다. 인구가 많아서인지 모르나 너무 세밀하게 분업이 되어 있었으며, 사업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직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청진시에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인이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며 우리 일행을 1호 방문자로 대우해 주었다.
■ 하이힐 신은 여성들이 도로 포장 공사
일행을 태운 밴은 비포장도로를 약 두 시간 넘게 달렸다. 오고가는 차량은 별로 없었다. 버스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잠깐 지나가는 트럭이 있었는데 피난 가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트럭 짐칸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트럭은 무척이나 많은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연료사정이 나빠서 휘발유를 대신하여 목탄을 연소시켜 차를 운행 할 수 있도록 자동차를 개조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목탄차를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북한의 어려운 실상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또한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서 비포장도로를 빗자루와 삽으로 다듬고 있었다. 양쪽 도로가에 약 20 미터 간격으로 흙더미를 만들어서 도로가 파손되었을 경우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노동자는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었다.
라선시 도심에서 자동차로 약 15분을 나가니 바로 비포장도로였으며, 청진시에서는 도심에서 약 5분을 지나가니 비포장도로였다. 이 비포장도로를 잘 가꾸기 위하여 수많은 여성이 동원되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도로공사 하는 여성들이 작업 신발이 아닌 하이힐 구두를 신고 있었다. 하이힐의 검정구두는 북한여성의 유행으로 과반수 이상의 여성이 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