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3-12-1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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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안부부터 물었다 굳이
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았다
양봉가 이씨는 꽃을 따라 북상 중인데
시방 안산에서 꿀을 받고 있단다
뒷산을 올려다보니
아카시아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곧
쏟아질 꽃비의 후광 속으로
불콰한 얼굴의 이씨가 지나가고
드문 야생벌들이 닝닝거리며 지나가고
산비둘기도 끼룩끼룩 지나가고
지나갈 것들이 환(幻)처럼
지나간 뒤꼍을 서성이며 난
지속가능한 미래를 또 생각해보는 것인데
이 비대한 문명의 광휘 속에서
꽃의 안부부터 묻는 당신
나의 안부, 가족의 안부 따위 묻지 않고
심란한 음성으로
오늘밤 야간도주하듯
아카시아 꽃비 맞으러 갈 거라고
눈부신 꽃비의 후광에 흠뻑 젖으러 갈 거라고

- 고진하 (1953-) ‘꽃의 안부‘ 전문


몇십년 전에 비해 두 배의 속도로 벌들이 사라져간다고 한다. 들꽃들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꽃과 벌이 사라진 지구, 그곳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유전공학이 아무리 크고 흠 없는 과일을 만들어 제공해준다 해도 자연의 선물과 비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울한 미래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어딘가 흰 눈꽃송이가 아카시아꽃잎처럼 흩날리고 있을 겨울날, 사람보다 먼저 꽃의 안부를 묻는 화자에 동감한다.

-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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