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세시풍속은 24절기로 돼 있다. 절기는 1년을 태양의 황경(黃經)에 따라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하여 계절을 구분한 것이다. 1개월에서 5일을 1후(候), 3후인 15일을 1기(氣)라고 하여 기후(氣候)의 기초로 삼고 있다.
한국인의 이 24절기 세시풍속은 농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농경의례로 볼 수도 있다. 본래 세시풍속은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의례로,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되어 복을 비는 의례였던 것.
오늘날 본래의 세시풍속이 지켜지는 세시명절은 단 2개로 굳어졌다. 설날과 추석이다. 언제부터였나. 3국 시대부터였나. 더 멀리 고조선 시대부터였나. 한국의 대표적인 세시명절인 이 2대 명절마저 그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가는 느낌이다.
‘전통적인 명절, 절기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그 심정은 이민자의 삶에서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한동안은 12월 중순 이후에나 보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추수감사절 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리고 12월이 되기가 무섭게 경쟁이나 하는 듯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이른바 송년모임이다.
그 모임도 가지가지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동문 송년모임이 있다. 그것도 총동창회와 기별 모임으로 나뉜다. 이제는 초등학교 동문 송년회도 유행이라고 한다.
이런 모임은 가장 기초적인 송년모임이다. 직장, 향우회, 또 동호인 송년모임에서 심지어 남자 중심의 군대동기 송년회 모임도 열린다.
언제부터인지 이 계절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쁨보다는 고난의 절기가 되고 있다. 한 해를 보낸다. 그러면서 다정한 지기(知己)들과 모임을 갖는다. 분명히 삶의 한 여유로운 단면이다.
그런데 12월이 되기가 무섭게 모임 스케줄이 빽빽이 이어진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상, 또 체면치례 때문에 빠질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고역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런 저런 모양의 송년 모임. 거기에서 빠지지 않는 게 술이다. 그저 한 잔의 축배로 끝나는 게 아니다. 서울에서 유행한다는 ‘신종 폭탄주’가 소개되기 마련이고 한 순배 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에서 연말로 이어지는 이 절기에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름 하여 ‘권주절’(勸酒節)이라고 하던가.
괜한 소리가 아니다. 한국인의 위스키 등 독주 소비량은 단연 세계 톱 수준이다. 그 독주 소비가 12월에 절정을 이루어 한 해 전체 소비량의 50%에 이른다는 보고가 나와 하는 말이다.
해마다 늘기만 하는 온갖 송년 모임- 이 새로운 세시 풍속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혹시 망향(望鄕)의 허전함, 이민생활의 허허로움을 달래기 위해 더 기 쓰고 모여, 더 마시고 하는 것은 아닌지…. 문득 스치는 세밑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