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구 “H”의 삶

2013-09-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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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한 뉴-스타 부동산 토랜스 지사

한국에서 “H”의 집안은그리 유복한 가정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68년전,그는 경기도 김포근처 가난한 농가의 많은 자녀들 중한 아들로 세상에 태어났다.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그는 거의 대부분 한국 남자들이 다니는 대학에 갈수 없었고, 간신히 5년제 공업 전문학교 기계과를 고학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중요시하고 선호하는 외모도 그리 출중하지 못하였다.

전문학교를 다닐 적에 별명이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대를 이어 유명한전략가 “방통(봉추)”이라고불리웠었고, 혹시 기억하는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으나,옛날 한국영화에서 험악한인상으로 주로 악역으로 출연하였던 “조석근”과 비슷하게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들었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을 많이 닮았다는 소리도 들었었다. 그러나그의 외모와는 달리 그의두뇌는 총명하였고 성격은착하고 성실하여 학교에서항상 모범생으로 동료 학생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공부도 열심히 잘 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한국의 조그만 기업체의 공장현장에서 기계업무를 돌보는 일을 하다가 1977년에부인과 함께 캐나다의 캘거리로 이민하였다. 그곳에서어느 기계공장의 설계사로취직하여 근무하던 중, 한영국인 동료를 만났다. 그동료는 그보다 2년 먼저 입사한 “데이빗 넬슨”이라는서로 비슷한 나이의 영국인으로, 둘은 서로 금방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였다.

당시 “데이빗”도 캐나다에 이민온지 얼마 안되는이민 초년생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데이빗”은 그 회사를 사직하고어디론가 훌쩍 다른곳으로떠났다. 홀로 남은“ H”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을하고 있었는데, 약 2년이 지난 어느날 “데이빗”으로 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데이빗”은 “H”에게 자기가 조그만기계공장을 차리어 시작하는데 동업으로 함께 창업하자며 제의해 왔다. 수중에가진 돈이 그리 많지 않았던 “H”는 부인과 상의하여직장을 사퇴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전재산 2만불을 “데이빗”의 공장에 투자하였다.

그런데 둘 모두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라 모든 것이서툴고 어색하여 사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문을닫게 되었다.

그러나 둘은 거기에 좌절하여 멈추지 않고 한번 더도전해 보기로 작정하고 다시 힘을 모았다. 새로이 공장을 개업한 둘은 힘을 모아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열심히 일을 하였다. 영어가능숙하고 외모가 현지 캐나다인과 친숙하게 받쳐 주는 “데이빗”은 회사의 대표로서 주로 외부 고객을 상대로 세일즈를 하였고, 실무에 경험이 많고 능숙한“ 방통”은 공장안에서 생산을담당하였다.

그들이 생산해 내는 제품들은 주로 원유채굴 장비에필요한 철제 용접제품으로단가가 높고 마진도 좋았으며“ 방통”을 위시하여 그 종업원들의 용접기술과 제품생산 능력은 많은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회사는일취월장으로 성장가도를달리게 되었다.


특히 학교 다닐때 부터우수하였던 “방통”의 수학실력과 기계설계 및 제도능력은 어느 누구도 따라 올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빨라서, “데이빗”을 비롯하여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경탄하였고 존경과 신뢰를쌓게되었다.

이제 성실과 진정으로 굳게 맺어 온 “H”와 “데이빗”의 인간관계는 그들의 가족보다도 더 친밀하고 돈독하여, 상호간의 신뢰와 존경이두터운 동업자이자 평생의좋은 친구가 되었다. 생활풍습이나 자라 온 환경, 그리고 인종과 국적이 전혀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도 철저하게 다른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내며 성공적인동업자로, 그리고 평생의 돈독한 친구로 함께 살아 가고 있는“ H”의 삶은 경제적인 성공을 떠나 세상의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은 훌륭하고 행복한 이민 1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

(310)96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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