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향은 그리움이다

2013-09-1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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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석 / 시인

태어나서 줄곧 도시에서만 자란 나는 고향이란 단어는 마음이 가뭇없이 막연해진다. 그럼에도 한 살 한 살 늘어가는 나이가 속도를 부쩍 더해가는 요즘은 문득 예고도 없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그 날들, 그 거리, 그 사람들이 마당을 서성이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에서 깨어 눈을 뜰 때 느닷없이 눈앞에 펼쳐진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던 대구에서의 기억은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스멀거리며 올라오던 열기에 지쳐 메고 오던 가방을 내팽개치고 길가에 앉아 울었던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댁 마당의 너무도 시원했던 우물이 더운 여름의 기억과 늘 함께 있다.

서울로 이사하고 한 2년은 한강변 가까이에 살았다. 봄이면 엄마 따라 언니 따라 바구니 옆에 끼고 강둑에서 나물을 캐고, 홍수가 지는 여름날에는 방까지 물이 차올라왔다. 마당을 출렁이는 빗물에 배를 띄워 놀던 장마철도 궂은비의 기억보다는 하늘을 찌르는 웃음소리의 울림이 더 크다.


철도 살짝 들어가던 사춘기를 지냈던 곳은 강북에서의 날들이다. 성북구 돈암동, 지금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그곳일 것이라 여겨질 정도이다. 가난했던 집 마당에 분꽃이 흐드러졌고 세상을 알아가던 가슴에 사랑의 설렘을 가져다 준 것도 그 시절이다.

세월이 더할수록 애틋해지는 고향에의 그리움은 9월을 지나며 가을을 채비하는 마음에 먼저 와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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