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천루 중심 자리한 미국서 가장 크고 바쁜 역”
1990년대 초 뉴욕 센트럴 철도 대항하고자
펜실베니아 철도가 1억1,400만 달러 들여 역사 건설
반세기 후 LIRR등 철도 새롭게 가설 변신 거듭
현재 90초마다 한 대 기차 발착하는 시스템에 의해 유지
MSG 옆에 자리한 커다란 출구에서 사람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다. 도대체 그 문이 몇 개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역에서 캐리어를 끌고 가방을 어깨에 둘러 멘 여행객들이 드나들고 있다. 31~33번가 7~8애비뉴에 걸쳐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펜실베니아 스테이션(Pennsylvania Station), 그냥 짧게 ‘펜 스테이션’이라고 불리는 기차역이다. 미드타운의 남서쪽 초입에 자리한 이 거대한 역은 ‘미국에서 가장 크고 바쁜 역’이라 할 수 있다.
■ 사업적 필요성에 의해 완성된 대형역
다만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도대체 왜 뉴욕에 있는 기차역에 펜실베니아라는 지역명이 붙어 있을까. 그것은 이 역의 역사 이해에 중요한 ‘펜실베니아 철도’에서 유래한다. 이 역을 짓고 초기 건물 임대자로서, 또 이 역과 미국 중서부 지역을 연결하는 기차 운영사가 바로 펜실베니아 철도였던 것이다.
1846년 ‘아메리칸 클래스 1 철도’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철도회사가 사업 확장을 위해 뉴욕까지 노선을 연장하면서 그 사업적 필요성에 의해 펜 스테이션 설립을 주도하게 되었다.
사실 20세기 초까지 펜실베니아 철도는 중서부에서 오는 열차가 뉴저지 저지시티에 도착해, 거기서 페리를 타고 건너야만 했다. 이에 반해 당시 라이벌인 뉴욕 센트럴 철도는 인근 그랜드센트럴 역까지 직접 연결, 이에 펜실베니아 철도가 대항하고자 지은 역이 바로 펜 스테이션이었다.
원래는 뉴저지와 뉴욕을 잇는 다리 건설을 고려했다. 하지만 행정적·기술적 문제로 단념한 뒤 1901년 이 역의 건설안을 발표한다. 이후 1903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윽고 1910년 11월에 완성 뒤 문을 열었다.
‘맥킴, 미드 앤 화이트’가 화강암과 콜로네이드를 주소재로 로마 제정기 칼라카라 황제의 대욕장을 모방해 보자르풍(제2제정 양식으로 불리는 건축 형태로 19세기 중엽 권위와 장식적인 요소를 강조한 양식)으로 완성시켰다. 총 공사비는 1억 1,400만 달러(현재의 약 27억 달러 정도에 해당)에 달했지만 그만한 투자 가치는 충분했다.
■ 달라진 시대상에 걸맞은 기능을 보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존 건축물에 새로운 기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거세졌다. 달라진 생활 패턴과 인근 지역의 얼굴은 그 흐름을 추동한다. 그로 인해 오픈 반세기가 지난 후 펜 스테이션은 대대적인 재공사를 갖게 된다.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 주변 시설과의 파트너십을 목표로 한 변신이 주과제였다.
이에 더해 1968년 이곳으로 이전해온 MSG는 펜 스테이션에 변신을 촉구했다. 그것은 단순히 뉴욕 기차역이나 엔터테인먼트 거점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드타운 재개발의 중요한 키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이 때 정비된 탑승 게이트는 기존의 서비스를 한층 더 강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기존의 앰트랙을 비롯해 NJ Transit, LIRR 등이 새롭게 가설된 것이다. 이에 더해 지하 역사내 콩코스를 대폭 확장해 사람들의 활동성을 높였고, 각종 매장과 숍까지 입점 시켜 편의시설을 충실히 갖췄다.
현재 펜 스테이션의 수송 담당량 만큼은 그랜드센트럴 역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하루 14만 명 정도 책임지는 그랜드센트럴 역에 비해, 그 두 배가 넘는 30만 명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90초마다 한 대의 기차가 발착하는 시스템에 의해 유지된다. 게다가 이는 전미 2위에 해당하는 워싱턴 DC의 유니언 스테이션에 비해 거의 두 배나 앞선 것으로 그 규모나 존재감 모두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수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