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멋진 여름날 저녁

2013-08-0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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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옥 자영업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저녁나절이면 야외공연장 할리웃보울이 떠올려진다. 매년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짚 가마니 깔개에 않아서 보는 가설 악극단 공연장에 자주 갔었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교우 유진에게 슬쩍 할리웃보울 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내게 필요한 뭔가가 있다. 핑크마티니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며 원하면 한자리 마련해 줄 수 있다고 귀띔 하였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가까이에 유진 씨만큼 멋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예닐곱 살 아래인 그녀는 우리 삶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것 즉, 여행, 커피, 음식, 음악으로 나를 환기시킨다. 특히 음악에 대한 사랑은 특별하다. 매년 밸런타인데이, 초가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그 해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 CD를 선물한다. 그렇게 받은 CD가 햇수가 쌓이니 수십 장이다.


10여 년 전 한 때는 그녀를 따라서 오페라에 심취했었다. 몇 년 동안 가을에 시작하는 오페라 공연시즌이 되면 너덧 편의 오페라를 골라 함께 보았다. 아니 그녀가 나에게 오페라에 대한 사랑을 가르쳤다. 그녀 덕택에 웬만한 오페라 레퍼토리는 다 관람할 수 있었다.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하는 LA 필의 연주도 그녀와 함께 였고, 디즈니콘서트 홀도 그녀와 함께 처음 갔었다. 여태 가 본 할리웃보울 공연도 대부분 그녀가 주선해서 다녀왔다.

핑크마티니 멤버들만큼이나 지적이며 음악을 사랑하는 유진 씨 덕택에 멋진, 때로는 황홀한 음악의 세계를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로 보고 듣는 할리웃보울의 야외공연은 맨 뒷자리도 나쁘지 않다. 산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면서 수다를 섞어가며 듣는 음악은 자유로워서 좋다.

연주가 시작되니 많은 사람들이 서서 핑크마티니의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흥에 겨워한다. 음악이 있기에 인생이 이처럼 행복하고 때로 근심거리로 속이 썩을지라도 견딜만하다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날 함께한 핑크마티니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들 음악처럼 영혼이 자유롭고 리드미컬해서인지 얼굴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일행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아래인 교우들인데 모두 미인들이다.

펼쳐둔 자리에 각자 가져온 음식들, 옻칠한 찬합에 담긴 롤, 신선하고 맛깔난 스시, 햄버거, 샐러드, 와인, 커피, 호두과자, 치즈 크랙커 등을 차려놓고 시원한 저녁바람을 쐬면서 빙 둘러앉아 먹었다. 밥을 먹은 후 커피와 와인을 마시면서 아름다운 그녀들과 멋진 곳에서 함께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멋지게 차려입어도 주변 사람들의 기를 죽이지 않는 사람들,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표정들, 그녀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골칫거리(?)인 자녀들이 있지만 얼굴은 언제나 밝다. 도를 넘지 않는 세련되고 유쾌한 농담 섞인 대화들도 오갔다.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신이 나에게 베푼 자비의 한 방법일 것이었다.

그날이 그날 같은 그저 그런 날들의 연속선 상에서 어느 여름날 저녁의 감미로운 경험은 특별하다. ‘때로는 힘들지만 인생살이는 역시 멋진 경험이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면에서 어떤 힘찬 의욕이 솟구침을 느낀다. 유진 씨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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