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부자(5)

2013-07-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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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록펠러는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부자다. 빌게이츠보다 3배나 많은 약 3,184억달러의 자산을 가진 세계 최고 부자이다. 그리고 그는 예전에 세계 석유시장의 97%를 한손에 움켜쥐고 있던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미국의 부호들과 마찬가지로 록펠러의 유년시절도넉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뉴욕주에 있는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살던 그의 가족들은 사기꾼 약장수였던 아버지 때문에 경제적 빈곤 이외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자주 겪곤 하였다.

그러나 록펠러는 돈에 대한 생각이 어려서부터 확고해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갖게 된 첫 직장에 취직할 때 시작한 회계장부를 분신처럼 가지고 다녔고, 평생 1센트도 빼놓지 않고 장부를기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넉넉지 못한집안형편으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16세때 클리블랜드에서 농산물 중개상점에 근무하다곧 자신의 중개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펜실베니아에서 석유 광맥이 발견되고 몇 년 후 록펠러는 석유 정제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 회사를 통해 막대한 재산을 모으게 되었으며 그 후1870년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창립했다. 뛰어난경영수완으로 얼마 안 되어 미국 최대의 정유회사가 되었고, 이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1872년에는 클리블랜드에 있는 경쟁사 26개 중 22개를 단 6주 만에 흡수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록펠러는 1882년 스탠더드 오일과계열사들을 통합하며 미국 석유시장 거의 전체를 주무르며 완전 독점체제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록펠러는 약관 33세 때 백만장자, 43세에는 미국 최고의 부자가 된다.

53세 때는 재산이 10억달러를넘으면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미국의 부자, 우리가‘ 철강왕 카네기’로 기억하는, 록펠러와 같은 시대를 살던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인 앤드류 카네기가 있다. 그는 기차역에서 심부름 하던 소년에서 초대형 철강회사의 CEO가 되었던 아메리칸드림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카네기는 1835년 스코틀랜드에서 섬유를 만드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내수공업이었던 아버지의 직장이 문을 닫게 되며 시작한어머니의 구멍가게는 그의 가족들을 가난에서벗어나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의부모는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로 이주한다.

미국에 온 카네기는 어려서부터 낚시터 심부름꾼에서부터 방직공장 노동자, 전보 배달원, 전신기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853년 펜실베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이후에는 남북전쟁에도 종군하였고, 1865년까지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별도로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침대차와 유정사업 등에 투자하면서 큰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카네기는 철강왕이 된 후에도 근로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고봉급을 삭감하면서 미국 산업역사에 있어 가장 잔인한 수완가로 묘사될 만큼 혹독한 기업인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파업을 강제 해산시키다 10여명이 사망하고 60명이부상한 1892년 ‘홈스테드 학살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론 세계적인 부호이나 악독한 사업가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평생 근검절약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했다.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라는 뜻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즈’란 말이 있다. 원래는 백년전쟁에서 프랑스 시민을 구한 귀족들의 희생정신을 뜻하는 말인데 요즘은 기업가들이 부를 사회에 환원하거나 대중들을 위하여 사회활동을하는데 쓰이는 경우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부자들 중에서 대표적 기업인 두 명,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석유왕 존 D. 록펠러가 대표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즈’를 실천한 기업인들에 속한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경제를 이끌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의 일생이 매우 흡사하다. 이들은 가난한 이민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사업가로 거대한 부를 쌓았고 그 과정에서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삶의후반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많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여러 면에서닮은꼴인 록펠러와 카네기는 젊은 시절 갖은수단을 동원해 경쟁회사를 무너뜨리거나 합병하고 시장을 독점해 부도덕한 독점 재벌의 표본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50대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카네기는1901년 카네기 철강회사를 JP 모건에 넘기고본격적으로 교육과 문화사업을 시작한다. 1902년 당시로선 천문학적 액수인 2,500만달러를기부해 공공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워싱턴카네기협회를 설립했다. 그 밖에도 카네기 회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등교육, 문화 분야에 3억달러 이상을 기증했다.


그가 미국 전역에 지은 도서관만 무려 2,500개에 달한다. 그리고 카네기의 영향을 받아 록펠러도 자선을 시작한다.

1913년 설립된 그의 록펠러 재단은 기금 330억달러가 넘는 미국의 민간재단이다. 자선단체로서 세계 최대 규모이며 교육재단과 의학연구소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중 하다. 이들은 큰 부를 이룬 뛰어난 기업가답게 자선에 있어서도 특별해서 "배고픈 이에게고기를 주지 말고 고 기잡는 방법을 가르쳐야한다"는 속담에 걸맞은 현명한 방법을 실천하고있다. 즉 극빈자에게 직접 돈이나 음식을 지원하는 대신에 교육 기회와 장학금을 제공하고,빈곤국에는 단순히 식량을 주기보다는 수확률이 높은 종자와 비료를 공급하며 농사법을 가르치기 위한 기술자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는 빌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 현대의 수많은 자선 기업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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