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총기난사 피로증후군

2013-06-1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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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못 견딜만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대로 지낼만하다 나중에는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같은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처음에는 하루도 못 살 것 같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그것을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생활해 간다.

이것이 인간이 빙하시대 등 온갖 악조건을 무릅쓰고 살아남은 비결인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이미 오래 전에 도태돼 사라지고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다. 아우슈비츠에서도 많은 인간들이 해방의 날까지 참고 기다리며 살아남았다.

총기 난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떤 인간이 총기를 난사해 수많은 무고한 인명이 살상됐을 때 처음에는 누구나 너무 놀라고 충격과 울분에 휩싸인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이번만은 총기 규제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다 하루 이틀 세월이 지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총기 규제고 뭐고 흐지부지되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던 일인 양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냥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만성이 돼 웬만한 사건 가지고는 놀라지도 않는다.

불과 6개월 전인 작년 12월 코네티컷 뉴타운 샌디후크 초등학교에서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을 포함 27명이 정신이상자에 의해 살해됐을 때만 해도 전국이 추도 물결에 휩싸였고 너도나도 들고 일어나 이번만은 총기 규제를 이뤄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결국 그 때뿐이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주 남가주 샌타모니카에서 역시 정신이상자가 샌타모니카 칼리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을 포함, 5명을 죽이고 경찰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존 자와히리로 밝혀진 범인은 레바논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부모는 이혼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건 당시 실탄 1,300발을 몸에 지니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경찰이 서둘러 죽이지 않았더라면 뉴타운을 능가하는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이를 대하는 정치권의 반응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사건 당시 오바마는 불과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 열린 기금 모금 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흔한 성명서나 사건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말도 한마디 없었다. 제리 브라운 가주지사나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LA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말로나마 총기 규제가 필요하고 이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찾아 볼 수 없다. 어차피 해 봐야 되지도 않을 일, 입만 아프다는 것인가. 정신병자가 총을 쏘면 대책 없이 그냥 맞을 각오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미국인들의 삶이 너무나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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