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꼬리

2013-05-30 (목) 12:00:00
크게 작게
나는 한때 꼬리의 수사에 몰두한 적이 있다
용두사미 혹은 어떤 무리의 끝
꼬리를 빼거나 꼬리를 내린다는 말에선
상처 입은 짐승의 몸냄새가 난다
천박한 도주의 내력이 새겨져 있다
꼬리란 동물에게
사냥의 전반부에 해당한다
먹이를 따라잡기 위한 탐색의 상징이다
굶주린 몸을 들어 올리는 추진력
질주의 시작이다
밥을 먹고 글을 쓰며
나는 긴꼬리원숭이처럼
서른두 개의 이빨로 조야하게 웃거나
망토 비비 꼬리처럼 말려 올라가곤 했다
비겁한 꼬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질주의 힘을
부드럽게 감아두기도 하는 꼬리
나는 오래된
꼬리의 용도를 가다듬고 있다


서안나 (1965- ) ‘꼬리’ 전문

동물에게만 꼬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꼬리가 있다. 꼬리를 빼고 꼬리를 치고 꼬리로 생각하고 꼬리로 뛰어오르며 험난한 생의 정글을 우리는 살아간다. 짐승의 몸냄새가 나기도 하고 비겁한 도주의 내력이 새겨져 있기도 한 꼬리는 꼬리가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다. 어딘가로 질주하기 전, 한 마리 치타처럼 엎드린 시인, 조용히 꼬리의 용도를 가다듬고 있다.


임혜신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