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부모의 가장 큰 선물이

2013-05-3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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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의 한 전문직 여성은 요즘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새삼 자랑스럽다. 하이텍 분야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데 자사의 중요한 고객 중 한국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측 대표들과 만날 때 “한국말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 한국 대표들과 정서적 교감이 있으면 좋겠다”며 상사들이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

글로벌 경제시대가 되면서 외국어 구사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대접을 받고 있다. 20세기만해도 미국사람들은 외국어를 배울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곳 사람들이 먼저 영어를 배워서 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이 일반화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 여러 나라에 거점을 두고 제조 및 영업을 하면서 현지인들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기업들이 깨닫게 된 것이다. 가능하면 그 나라에 대해 잘 알고 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직원들을 내세우고 싶어 한다. 한인 2세들이 어느 분야에 있든 한국말을 잘 하면 그만큼 더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바이오텍 분야의 한 2세 남성도 얼마 전 한국말을 써야 할 상황에 부딪쳤다. 20대 후반의 그 청년은 일과 관련해 한국말이 필요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사람 고객에게 프리젠테이션 할 일이 생기자 상사가 당연한 듯 그에게 맡긴 것이다.

“한국말을 할 줄은 알지만 어린아이가 하는 말 수준이지요. 비즈니스 차원의 대화를 하려니 보통 스트레스를 받은 게 아니었습니다.”어려서 한국말 배우기에 소홀했던 것이 어른이 되고 나니 후회스럽다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남가주 한국학원이 개교 40주년을 기념해 20대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이다. 한국말 영어를 모두 잘하면 조부모나 부모와의 관계가 좋고,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해지며 한인커뮤니티에 대한 소속감이 크고, 사회 진출 때 경쟁력이 강화되는 이점이 있는 것으로 이들은 응답했다.

이중언어 구사의 장점은 이뿐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면 인지능력과 집중력이 강화돼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특정 사물이나 상황 앞에서 이중언어 구사자는 어떤 언어를 쓸 것인가를 선택하고, 그 언어에 맞는 어휘와 문법구조를 생각해 말을 하게 되는 데 이런 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뇌가 그만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한인부모들 중 자녀들의 영어 실력이 뒤질 까봐 집에서도 영어를 쓰게 하는 부모들이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가정의 자녀들에 비해 한인 자녀들의 영어 실력이 일반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똑똑한 아이라면 자라면서 충분히 극복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한인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포기하지는 말아야 하겠다.

한인부모들이 돈 들이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바로 한국말 구사능력이다. 한국말 제대로 못 가르치면 앞으로 두고두고 자녀의 원망을 듣게 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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