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 그 실망과 희망

2013-05-23 (목)
크게 작게

▶ 신, 일상, 깨달음

‘사람 때문에 못 살겠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사업을 해 나가면서 고용인들과 사업 파트너 때문에 겪는 고충을 그런 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는 그 말이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 말을 표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사람이 사람 때문에못살겠다는 일 그 이상 우리에게심각한 일이 또 어디에 있으랴 싶었고,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사람 때문에 겪는 실망과 쇼크가 너무 커서 사람에 대한 무섬증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첫 외국 나들이로 미국에 왔고, 또 그 때가 북한의 전쟁위협 시기와 맞물려 있던 때라서, 모든 한국인과 미국인들, 그리고 주변국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던 그 중요한 때, 윤창중씨가 한국의 대통령 대변인으로 보여준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는 그 뉴스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경악시켰습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 와중에서 윤창중씨가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말 같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는것을 보면서 우리 한인들은 경악을 넘어 그야말로 절망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인물이 한국의 전 언론인이었고, 보수논객이었고, 대통령 대변인이었다니,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아닐것입니다. 윤창중씨의 술 취함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고, 그의 추행은 우리 모두의 행실이었고, 그의 철면피한 해명은우리 모두의 변명이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동안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법, 언론의 지도층 인물들을 비롯하여 일반 서민들, 그리고 해외공관원들과 동포들까지 스스로 자신을 살펴 볼 때, 누가 윤창중씨에게 떳떳하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한국의 언론계가 연일 보여준 하이에나식 비판과 한국의 정치계가 보여준 정치공세 태도는 모두 실망스러웠습니다.

윤창중씨 사건은 우리에게 비평과 야유의 소재가 아니라우리가 모두 수치를 느낄 일이었고, 우리의 자성이 필요한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크게 뉘우치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동안 청문회다 뭐다 해서 한국국회가 보여준 광경은 더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이 덜 깨끗하지 못한 사람을 청문회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사회적 지도자들은 타인에게 돌을 던지기에 바빴습니다. 여기에 더 심각한 우리의 절망이 있습니다. 또 그것은 더 근원적인 인간에 대한 실망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음의 고난을 겪으시고, 거기서부활하신 후에, 제일 먼저 스승을 배반하고 도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용서하시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그래도 찾아가실 대상은 제자들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말뜻을알아듣고, 다시 뉘우칠 가능성을 가진 대상이 제자들이었기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일단을 보여주시는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아들을 세상의 죄를 씻어줄 제물로내어 놓으신 것은, 이 세상에는 용서하고, 희망을 걸어볼 대상이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타락하고, 아무리죄를 짓고, 아무리 악하더라도, 그가 사람이기에 희망이 있다고 보셨던 것입니다.


실망스런 인간 속에, 희망의 인간이 있습니다.

들었던 돌을 버리고, 연민과 동정으로 그 비난의 대상을 돌아보아줄 수 있을 때, 우리는 희망을 가진 인간 가족이 될 수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람입니다.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는 대상은 역시 사람뿐입니다.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