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2013-05-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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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시 아프리카!

선교하는 삶

김 범 수 <치과의사>

지난 가을의 짧은 아프리카 선교여행에서 돌아와 반년 만에 다시 아프리카 행 비행기를 탄다. LA에서 27시간, 남아공까지는 36시간이다. 길고 지루한 비행길. 나는 아프리카가 좋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회교도 마을 모얄레를 거쳐 에티오피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보츠와나, 모잠비크 등이 일정에 들어 있다.

선교지마다 끌려 다닌 이동식 치과장비도 다시 화물칸에 실렸다. 이번 여행은 연로하신 목사님을 중심으로 팀을 이룬다. 그래서 치과사역 이외에 현지인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도 포함되어 있다. 모얄레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고 학생들을 격려하며 교직원들을 위로할 것이다. 남아공의 한인교회와 또 다른 지역의 선교사들도 만나게 된다. 지도 속에 있는 아프리카는 멀지만 마음이 먼저 달려가면 곁에 사는 소원한 이웃보다 가깝다.

우리 일행은 허용된 짐의 한도를 훨씬 넘어 모두 열두 더미의 대형 이민가방을 쌌다. 선교지에 나누어줄 축구공과 학용품, 의류와 약품, 일용품과 음식 등이다. 학교 사역을 하는 모얄레에는 특별히 프린터를 챙겨야 한다. 수시로 시험을 치를 때마다 프린트해야 할 시험지 양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박스째 들고 가면 안전하지만 부피가 너무 커지니 알맹이만 꺼낸다. 이번엔 깨질까 걱정이다. 프린터를 옷가지로 둘둘 싸서 트렁크 맨 가운데에 넣는다. 우리에겐 흔해 빠진 프린터 한 대가 그 곳에서 얼마나 요긴한지.


유럽을 거쳐 도착한 땅, 아프리카. 우기를 맞아 푸른 비가 내린다. 눈이 닿는 곳마다 아카시아 나무들이 푸르고 푸르게, 질척거리는 진흙땅에도 초목들은 푸르게 푸르게…경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한 모얄레에는, 선진국 국민의 편의를 모두 버리고 케냐 시민으로 귀화한 한인 선교사가 그의 아들과 함께 나와 우리를 맞는다. 10년 전, 뇌암 판정을 받고 사경을 헤매었던 소년! 그가 통과한 시간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암 투병기간에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했던 소년이 이제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해 아버지의 사역을 돕기 위해 한동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이곳에 와있다. “목사님!” “인이야!”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할아버지 목회자와 청년 선교사는 얼싸안고 재회의 감격을 나누었다. 방문기간 내내 인이는 설교 통역으로 훌륭하게 쓰임을 받았다.

의료봉사라고 언제나 일정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사역지를 방문한 10번 동안 단 한 번도 문제없이 지나간 적은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돌아오는 길에 경비행기에 짐을 다 싣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깐깐한 영국인 기장이 무게가 초과되어 짐을 실어줄 수 없단다. 다음 방문지인 남아공으로 가져갈 물품들이다. 결국 사람만 먼저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겨진 짐은 선교사가 차에 싣고 동시에 출발을 했다. 울퉁불퉁 비포장 길 운전 28시간. 사랑을 전하러 간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의 빚을 지고 온다.

함께 가신 90세 원로목사님께 만나는 사람들이 묻는다. “힘들지 않으세요?” 이어지는 설교, 현지인 목회자 세미나 인도… 목사님은 꽉 짜인 스케줄 틈틈이 성경을 읽고 깨알 글씨로 노트에 정리를 하다가 웃음 띤 얼굴로 대답을 주신다. “가만히 누워 있다가 가면 뭐합니까? 이렇게 선교지를 다니다가 죽는 게 내 소원입니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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