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빼기 작전

2013-04-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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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범 수 <치과의사>

종종 가는 미국 식당 옆에 피트니스 짐이 생겼다. 짐이라기엔 너무 협소하고 창고 같은 느낌이다. 서바이벌 게임에 나오는 인체 한계 시험장 같다. 식당보다도 더 좁은 공간. 그 안에 운동기구들은 흔히 보아온 전기장치(일립티컬) 러닝머신들과는 다르다. 천장으로부터 늘어진 두꺼운 벨트들,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쇠공, 아무런 치장도 없이 벽돌을 쌓아놓은 것 같은 장애물, 튼튼한 검정 고무줄에 매달린 두 개의 핸들… 얼핏 보면 무슨 고문실 같다.

한 번은 그 식당에 가서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떼를 지어 짐으로부터 줄줄이 뛰어나온다. 운동복 상의는 온통 땀으로 젖었다. 모두들 헉헉 거친 숨을 쉰다. 무지막지하게 무거워 보이는 쇠공 하나씩을 손에 들고 오른쪽 왼쪽 번갈아 어깨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뛰어간다. 밥을 먹던 손님들이 다 고개를 빼고 놀란 눈으로 그들을 내다본다. 짐에서 나온 그들은 씩씩대면서 그 일대 한 블락을 뛰어서 다시 짐으로 돌아왔다. 운동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라 지옥이다. 나도 저렇게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질까? 아니다. 살도 빼보기 전에 먼저 몸살 나서 죽을지 모른다.

칠뜨기라는 남자가 하루는 헬스클럽에 찾아갔다. “A코스는 일주일에 100달러, B코스는 300달러입니다” 안내원이 말했다. 당연히 싼 거가 최고라 칠뜨기가 A코스에 당장 등록을 했다.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팔등신 미녀가 가까이 오더니 칠뜨기에게 윙크를 하면서 “지금부터 나 잡으면 당신 꺼!” 하고는 냅다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일주일 내내 뛰어도 그녀를 못 잡은 칠뜨기가 하는 수 없이 이번엔 B코스에 등록을 했다. 거기엔 칠뜨기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울퉁불퉁 근육질의 남자가 산발머리를 한 채 침을 질질 흘리며 말했다. “나한테 잡히면 넌 내꺼!” 그리하여 두 주 사이에 엄청 살을 뺐다는 후문인데 믿거나 말거나…

십수 년 전, 나도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 빌딩 맨 위층이 수영장인데 천장 전체를 유리로 덮어 햇살이 물결에 반짝였다. 여기서 매일 같이 수영을 하고 어느 날 남자 인어가 된 환상이 떠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10년 동안 수영장에 들어간 횟수가 열 번도 안 된다. 나 자신과의 약속은 언제나 자책만 남긴다.

그뿐이랴. 집에서 해본다고 새해맞이 결심으로 샀던 값비싼 러닝머신은 3개월 뒤 옷걸이가 되었다. 근육운동 한다고 산 무거운 아령은 바람만 불면 쾅 닫히는 도어를 고정시키는 받침대다. 줄넘기는 두어 번 하다가 놓아두었더니 지금은 마당에 벌어진 나뭇가지들을 동여매는 밧줄로 변했고 서너 번 쓴 배드민턴 채 두 개는 뒷마당을 자기 전용 화장실로 쓰고 있는 우리 개의 용변 처리용 집게다.

운동의지 박약이던 내가 심기일전! 다시 새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다. 다음 주에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선교 길에 타야 할 경비행기 요금은 한 명에 얼마가 아니라 몸무게 1킬로당 요금을 계산한다. 이러니 살을 빼는 것이 선교의 첫 걸음이다. 이번 결심은 잘 지켜져서 부디 귀한 선교비를 낭비하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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