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거기 아버지가 서계신 것 같았습니다. 살아생전 옷 한 벌 못해 드린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인데 게티에 걸리고 보니 이제야 딸의 도리를 한 것 같네요”
루벤스의 ‘한복을 입은 남자’ 전시에 가면 마지막 방에서 조금 색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지 작가 김태순(62·사진)의 대형 한복 콜라주. 게티 관계자들이 보자마자 “코리안 라우셴버그!”라고 탄성을 질렀다는 종이 한복 작품이다(라우셴버그는 일상의 오브제를 사용한 아상블라주로 유명한 미국화가).
‘조선의 얼’이란 제목의 이 작품이 게티 미술관에 걸리게 된 것은 “인연이며 기적”이라고 김태순 작가는 말한다.“ 사람도 작품도 인연이 있어야 만나는데, 루벤스의 드로잉이 나와 인연이 됐다는 게 기적 같기도 하고 오래 전부터 계획된인연 같기도 합니다”
김 작가가 아버지 타계 후 평소 나누지 못했던 마음을 깊이 교감하며 만든 이 작품은 서울과 뉴욕, LA를 거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너울을 일으킨 후 게티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지난 2011년 뉴욕의 실비아 월드/포 김 아트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에 이어 그해 9월 LA의 앤드류샤이어 갤러리에 전시됐던 이 작품은 2012년 3월 LA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국작가 3인전을 통해 소개됐었다. 사실은 너무 대작이라 한국까지 운송비를 댈 수 없어 LA의 한 창고를 빌려 보관했고, 그랬기 때문에 문화원에서 전시가 가능했으며, 그 전시를 본 게티 관계자들이 즉석에서 전시 결정을 내렸다니, 그것은 과연 기적일까 인연일까?
김태순은 두루마기, 치마저고리, 고서, 전통가구, 온돌방 등 추억 속에 박제된 전통의 이미지들을 한지라는 소재를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적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작가로, 전국 시골의 골동품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고서와 습지들이 그의 작품재료다.
“옛날 가구와 병풍을 뜯어내면 뒤에 배접한 낡은 고지들이 나옵니다. 옛사람 누군가 낙서한 종이도 있고, 문화재 가치는 없으나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인 종이들이죠. 채색으론 나타낼 수 없는 세월로 익은 색과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기위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작품 구석구석에 사용합니다. 사람들이 현대작품이 아니라 18~19세기 작품인 줄 알기도 해요”
부산 동아대 미대를 졸업하고 수채화, 유화, 동양화, 서각, 서양화, 조각을 모두 공부했다는 김태순은 국내외에서 14회의 개인전과 수많은 그룹전 및 아트페어에 참가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www.kimtaes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