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저거 따도 돼?”
“안 돼! 아저씨네 이웃집 거잖아.”
“아저씨네 마당으로 넘어왔는데……”
“아저씨께 여쭤봐.”
조카의 딸인 여덟 살 에밀리가 제발 제 간청을 거절하지 말라는 듯 애절한 눈초리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오른쪽 담을 넘어 우리 집 뒷마당으로 늘어진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웃집 석류가 탐이 났던 모양이다. 열네 개나 달렸었는데 이래저래 다 없어지고 마지막 달랑 하나 남은 석류였다. 나는 지체 없이 에밀리의 간청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엄마는 괜히 안 된다고 그래.”
석류를 따서 두 손에 들고 에밀리는 시위하듯 제 엄마에게 내보이며 자랑했다. 정초 인사차 아이를 데리로 찾아온 조카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석류의 주인 행세한 것을 나무라듯 중얼댔다.
“이웃집 거라고 안 된다고 했는데…”
조카는 내가 ‘이웃 집 석류여서 딸 수 없다’고 에밀리에게 강경하게 말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이다. 순간 내가 너무 경솔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태초에(?) 석류는 단연코 우리 것이 아니었다.
10년 전 이사를 하던 해 나는 담을 넘어온 이웃 집 석류와 첫 대면을 했다. 담에 바짝 붙어 뿌리내린 이웃 집 석류는 많은 가지들을 담 넘어 우리 집 뒷마당으로 드리웠고 그해 늦가을 ‘봄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탐스런 열매를 선보였다. 아마 예닐곱 개는 되었을 것이다.
“저거 몇 개 따다 추수 감사절 식탁 장식에 쓰면 안 될까?”
“남의 것으로 치사하게… ”
“옆집에선 알지도 못할 텐데. 우리 마당으로 넘어오면 우리 거 아냐?”
“양심도 없어? 옆집 주인 허락 얻지 않고는 아예 손 댈 생각도 하지 마!”
나는 집사람과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금단의 열매’가 된 석류들은 그해 가지에 매달린 채 껍질이 쩍 갈라지며 루비 빛 석류 알을 드러내고 시들어 천명을 다했다.
이듬해에도 석류는 변함없이 탐스런 열매를 매달고 나를 유혹했다. 나의 입은 여전히 도덕군자였으나 마음속에서는 탐심이 익어가고 있었다. 두어 개 따다 과일 바구니에 담아놓고 싶기도 했고 잘 익은 석류 알을 발라내 입안에 털어 넣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그 해 나는 가까스로 내 양심을 추슬렀고 석류는 계속 ‘금단의 열매’로 생을 마쳤다.
아마도 이사 뒤 네 번째 해였을 것이다. ‘금단의 열매’가 한낱 석류로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추수감사절 과일 바구니에 두 개가 올랐다. 그 해 내 양심은 초심을 까마득히 잊었다. 나는 달콤새콤한 석류 맛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 뒤 담 넘어온 석류는 의당 우리 몫이었다. 지난 12월에는 가장 크고 잘 익은 석류 네 개를 도난당했는데 나는 이웃을 범인으로 가차 없이 지목했다. 우리 집 석류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는 이웃 집 이층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인사 정도나 하고 지내는 이웃집 여주인이 이층에서 우연히 우리 집 뒷마당의 석류를 보고 소유권을 행사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아니 제 아무리 저희 집 나무 가지에 달렸기로서니 어떻게 남의 집에까지 허락도 없이 몰래 들어와 따가? 도둑이 뭐 따로 있어. 치사하게.”
내 입에서 이웃을 향한 불만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어느 새 석류의 당당한 주인이 되어 있었다.
천진난만한 에밀리의 손에 들어간 석류로 인해 나는 잠시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석류 도둑이 어디 따로 있나? 석류는 바로 ‘선악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