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지난 일 년 간 나는, 우리는, 무엇을 했고 어떤 것을 이루었는가? 지난 일 년을 마무리하면서 주위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연하장으로 부지런히 인사를 챙기는 시기이다.
2000년 초연이후 성황리에 공연되며 한국에서도 6번의 앵콜 공연을 가진 바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Rent), 지난가을 ‘2012년 오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을 끝낸 유명 뮤지컬 렌트를 한번쯤 본 한인들이 많을 것이다. 이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 ‘Seasons Love’ 가사 속에서 1년을 오십이만오천육백분으로 노래한다.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시간,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소중한 시간을 당신은 어떻게 지내나요, 어떻게 일 년을 보내나요. 낮으로, 저녁으로, 한 잔의 커피로, 인치로, 마일로, 웃음과 싸움으로,......사랑은 어때요? 사랑으로 지내는 것 어때요?”하는 가사다.
또한 “우린 렌트를 낼 수 없어, 작년에도 안냈고 올해도 안냈고 내년에도 안 낼 거야, 어차피 우리 인생은 빌린 거니까 사랑을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빌릴 수는 있어”라는 노래도 있다.
이는 사랑도 인생도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지만 빌릴 수는 있다는 것이다. 빌릴 수밖에 없는 인생이고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이지만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소중한 시간들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아파트 랜드 로드가 들으면 세입자들의 횡포와 뻔뻔함에 복장 터질 노릇이지만 이들 가난한 예술가들은 ‘과거도, 미래도 중요하지만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며, 언젠가는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지금의 처지를 비관하지 말라고 전한다.
뉴욕의 연말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이 뮤지컬은 왜 일 년을 분으로 나타냈을까? 1년은 365일로 하자니 누구나 아는 흔한 표현이겠고 8,760시간이라고 하자니 한 시간 내에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므로 별로 시간의 중요함을 모르겠다. 그렇다고 3,153만6,000초로 표현하자니 너무 광범위하고 무얼 할지 모를 정도로 엄청나 시간 개념이 잘 안 잡힌다. 그러니 귀하고 중요한 순간을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표현이 분일 것이다.
이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시간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였나요? 2012년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큰일들이 뻥 뻥 터져 사람들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불과 두어 달 전에 초강력 허리케인 샌디가 몰아닥쳤고 총기난사 사고가 되풀이되었고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12월초부터 폭설에 혹한이 계속 되고 역시 새 대통령을 선출했다.
미주에 사는 우리들도 덩달아 바빴다. 시민권자 한인들은 오바마냐, 롬니냐를 두고 선거에 참여했고 한국국적 한인들은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재외선거에 참여하여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유권자로서 한 표를 찍었다.
2012년 우리에게 주어졌던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을 다 쓰고 나면 2013년의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이 다시 온다. 어제나 오늘이나 다 똑같은 시간이 지나갈 뿐인데 사람들이 올해, 내년을 만들어놓고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시점을 만들고 있다.
올해 며칠 남은 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4,320분~7,560분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일 년을 돌아보고 정리하자.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맺은 인연을 떠올리고 사랑을 전할 시간이다.
지난 2012년을 돌아보면서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자. 지난 시간들이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찾아보면 ‘그래, 잘했어, 장한 일 한 거야’ 하며 흐뭇해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늘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쳐왔다면 지금이라도 먼지를 닦고 깔끔하게 손질하여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자. 또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새로운 계획, 새로운 취미, 새로운 책을 설레며 기다리는 것도 미완의 삶을 좀 더 충실하게 사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날들이 남아있는지 모른다. 그동안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힘들어하고 내버려두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오늘 이 시간,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우리의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소중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