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11-2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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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 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 고무신 옮겨보는 것

적막천지
한밤중에 깨어 앉아
그 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린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김사인(1956 - ) ‘늦가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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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한 사람을 훔쳐보고 있다. 나이는 불혹을 넘겼고 얼굴이 무너진 여자다. 한밤중에 깨어 머리를 감고 흐린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고 있다. 다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고단한 삶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다시 또 늦은 사랑에 주춤주춤 발을 옮겨보는 그 여자가 제발 행복하기를, 그녀의 오한이 덜어지기를...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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