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거인단의 묘미

2012-11-07 (수) 12:00:00
크게 작게
미국인들은 일면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론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 보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의 하나가 연방 헌법이다. 건국한 지 60여년 밖에 안 됐는데도 하구한날 헌법을 뜯어고치고 마지막으로 고친지 30년도 안 됐는데 다시 고치려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건국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때 제정된 헌법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 헌법이 다른 나라와 특이하게 다른 점은 대통령을 뽑는데 직접 선거를 하지 않고 선거인단을 먼저 뽑고 그를 통해 다시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은 일반 대중에게 직접 선거권을 주면 대중 선동가들에 휘둘려 장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인사들을 먼저 고른 후 이들로 하여금 대통령을 선출하게 하면 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제도를 마련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인구가 적은 주를 배려하기 위해서다. 미 합중국이 태어날 때 작은 주들은 강한 중앙 정부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인구 비례로 힘이 배분되면 인구가 많은 주들이 주도적 발언권을 갖게 되고 군소주들은 찬밥 신세로 전락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달래기 위해 마련된 선거인단은 일부러 작은 주에 더 힘이 실리게 만들어져 있다. 일례로 유권자 인구 24만의 와이오밍은 3명의 선거인단을 선출하도록 돼 있다. 유권자가 1,800만인 가주는 55명의 선거인단을 뽑는다. 와이오밍은 인구 8만명당 1명을 뽑는데 가주는 인구 32만명당 1명을 뽑는 것이다. 와이오밍 주민 하나는 가주민 4명 가치가 있는 셈이다.

불합리한 점은 또 있다. 메인과 네브라스카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가 승자 독식주의를 택하고 있어 1표라도 많으면 그 주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간다. 따라서 승부가 뻔한 지역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미국 주는 50개건만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대선 선거 비용의 98%는 소위 경합주라 불리는 15개의 ‘swing state’가 가져간다.

이런 불합리한 면에도 불구하고 이들 제도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선 소수주를 우대하는 선거인단 제도를 없애려면 연방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50개주 가운데 3/4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소수주들이 이에 동의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승자 독식주의도 마찬가지다. 각주마다 우세한 정당이 자기한테 유리하게 돼 있는 제도를 바꾸려 할 리 없다. 이것이 사라지면 모든 주에서 유세를 해야 하는 후보들도 이를 원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선거인단과 승자독식주의는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변치 않고 유지될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