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11-0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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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저녁답 은사시나무 숲을 떠나
목젖이 붓도록 울며 날아가는 새들과
어두운 하늘 난간을
저어가는 별이 한 채

미늘에 꿰인 것처럼 목울대가 아픈 날
어깨를 툭 치며 건네는 바람의 말
‘눈물을 흘리는 일은
웃기보다 쉬운 ‘일

잎새 모두 떨구고 선 나무 앞에 부복하여
오랜 세월의 문장 눈으로 더듬는데
나무의 무릎께까지
수북하다, 젖은 파지


정혜숙(1957 - ‘)11월, 소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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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저녁 풍경 속에 온통 빠져들어 있는 시인이 보인다. 툭 건들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새도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목젖이 붓도록 울고, 바람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웃기보다 쉽다’고 말을 건넨다니 말이다. 너무나 아프면 비명도 안 나온다던가. 그래서 시가 잘 안써지나 보다. 어느새 시인 자신이 돼버린 저 나무, 무릎
께까지 파지가 수북하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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