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가뭄

2012-08-0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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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는 특이한 곡물이다. 인간의 손에 너무나 잘 적응해 이제는 인간이 도와주지 않으면 번식하지 못한다. 최대한 씨를 늘리는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자연 상태로 땅에 떨어지면 과포화 상태로 죽게 된다. 그러나 이런 풍성함은 인간에게는 축복이다.
지금부터 1만년전쯤 멕시코 남부 지역에서 자라는 테오신테라는 풀을 멕시코인의 조상인 마야족이 길들여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은 아직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옥수수만큼 광범위한 지역에서 토양과 기후에 관계없이 잘 자라는 곡물은 없다는 사실이다. 1620년 지금 뉴잉글랜드 일대에 정착한 영국의 필그림들은 영국에서 하던 것처럼 밀을 심어보려 했으나 추운 날씨와 풍토에 맞지 않아 실패하고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들을 구해준 것은 이 지역 출신으로 스페인을 거쳐 영국을 끌려갔다 탈출한 스콴토라는 인디언이었다. 영어를 할 줄 알았던 그는 이들에게 옥수수 심는 법을 가르쳤고 영국인들은 그의 도움으로 아사를 면했다. 옥수수로 배를 채운 이들이 감사의 표시로 시작한 것이 미국 최대 명절의 하나인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인들의 주식이 빵이므로 밀이야말로 미국 최대 곡물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착각이다. 옥수수가 재배 면적으로는 40%, 총 수확 매출로는 3배가 많다. 옥수수는 단지 식용으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축의 사료로서도 필수적이다. 미국에서 길러지는 대부분의 소와 돼지, 닭 등 가축은 옥수수를 먹고 큰다.


이처럼 옥수수가 널리 쓰이는 것은 단위 수확량이 다른 어떤 곡물보다 높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물처럼 마시는 콜라를 비롯 대부분 탄산음료에 들어가는 시럽의 원료도 옥수수고 화석 연료 대용으로 쓰이는 에타놀도 옥수수로 만든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는 멕시코 인들은 ‘걸어 다니는 옥수수’로 불린다. 토티야 등 이들이 옥수수를 통해 섭취하는 칼로리는 하루 전체 섭취량의 40%에 이른다. 그러나 최근 음식 성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멕시코 인들보다 고기와 콜라 등을 통해 옥수수를 더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미국인의 식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옥수수가 말라죽어가고 있다. 가뭄 때문이다. 광대한 미국 본토의 절반이 가뭄 재해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60년래 최악의 가뭄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자칫 하면 역사상 최악이 될 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지난 6주 새 옥수수 가격도 40%나 급등했는데 육류와 우유 등 낙농 제품 값도 오를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들의 원료가 모두 옥수수이기 때문이다.

재난은 이상하게 함께 닥치는 경향이 있다. 이번 가뭄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30년대 ‘더스트 보울’을 연상시킨다. 중서부 지역 넓디넓은 풀밭의 야생 잡초를 모두 뽑고 농토로 만들었는데 잡초가 사라진데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강한 바람이 불자 흙이 먼지로 변해 농장들이 초토화되고 만 것이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농부들은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며 서부로 몰려들었지만 이곳 또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단한 현실이었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분노의 포도’란 소설을 쓴 존 스타인벡은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번에 왜 이런 대재난이 왔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한데 일부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필연적 결과라며 앞으로 온난화가 심화될수록 미 중서부의 가뭄 등 기상 이변은 더 심각해질 것이며 피해도 커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이같은 결론이 아직은 속단이라는 신중론도 있다.

어쨌든 이번 가뭄으로 지난 수년간 미국의 대불황에도 불구, 농산물 호황으로 호경기를 누리던 미 중서부 지역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는데 혼자서만 편해서야 되겠느냐는 하늘의 뜻인가. 한국은 한국대로 사상 최장의 열대야와 폭염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을 빼고는 별로 기쁜 소식이 없는 요즘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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