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8-0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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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 환자처럼
한밤중에 일어나 다림질을 한다

분홍도 아닌
빨강도 아닌
색깔을 구분치 못할 여린 잎들이
질펀히 너부러져 꽃밭을 이룬
꽤 오래된 남방 하나를

손목 힘 다해 눌러대는
손가락사이로
스트라이크라도 한 방 날릴 듯이
고개 들고 일어서는 꽃망울들


어느새
발갛게 번지고 있다

- 박선옥(1957 - ) ‘꽃이 필까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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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속에서 일어서려는 꽃을 다리미로 온 힘을 다해 누르고 있다. 변태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 가학적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만을 독자에게 던지고 시인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저 화자는 몽유병 환자처럼 한밤중에 일어나 다림질을 하고 있으며 꽃은 왜 죽어라고 일어서려는 것일까. 분노, 걱정, 실망, 사랑, 욕망, 슬픔 등등 때문일까? 꼬리를 물고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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